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한슬의 숫자읽기

돌봄재난 203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박한슬 약사·작가

박한슬 약사·작가

며칠 전 합계출산율이 발표됐다. 다수의 예측대로 예년과 유사한 수준인 0.72명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결과에 따라오는 정치권의 반응 역시 쉬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저출산 정책의 무용성을 성토하고,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근본적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은 출산율 발표 즈음에 마치 세트 메뉴처럼 따라온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으며, 저출산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엔 거의 변함없는 일상이다.

저출산을 두고 이런 말 잔치만 이루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저출산이 추상적이고 먼 미래의 위험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면한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간단히 계산해보자.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앞으로 15년이 지나면 만 15세가 된다. 연도로 짚어보면 2038년이다. 그러니 사망률이 현재와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전제를 깔면, 우리는 15년 뒤의 15세 이상 인구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15세부터 65세까지의 연령대를 일컫는 생산가능인구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같은 방식으로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몇 명인지도 구해지니,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령인구 몇 명을 부양해야 하는지를 뜻하는 노년부양비(elderly dependency ratio)도 구해질 수 있다. 15년 뒤, 세 수치의 변화는 어떨까?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2023년의 생산가능인구가 3657만명이고 노령인구가 943만명이니, 노년부양비는 두 값을 나눈 0.26이다. 쉽게 말해 한창 일할 나이대의 청장년층 4명이 노인 1명의 부양비를 나눠서 짊어진단 의미다.

여기까진 현재의 유럽 선진국들과도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15년이 흐른 2038년엔 생산가능인구가 3013만명 수준으로 줄고, 노령인구는 1645만명으로 늘어 노년부양비가 0.55로 작년보다 2배 가까이 뛴다. 다시 말해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15살이 되는 해에는 청장년층 2명이 노인 1명을 오롯이 부양해야 한단 의미다. 이런 상황이 오면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해야 할 생산가능인구가 돌봄노동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가처분소득의 상당 부분을 돌봄에 지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돌봄재난’이다.

설령 올해 기적적인 저출산 대책이 나와, 내년부터 출산율이 대폭 늘어도 바뀌는 건 없다. 신생아가 출생 즉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게 아니라서다. 결국 저출산 정책을 아무리 붙들고 있어봤자, 오래된 미래인 돌봄재난은 해결되지 않는단 말이다. 고령의 노인을 돌볼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복지 지출과 의료 비용을 마련하는 대책을 찾는 건 이제 저출산과는 별개의 영역에 진입했다. 그런데도 ‘근본적 저출산 대책’ 타령은 쉬이 그치질 않으니 아쉬울 뿐이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이나 외국인 돌봄인력 도입을 논의할 때 아닌가.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