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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신진서는 신이 되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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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6연승 끝에 농심배 우승을 차지한 뒤 인천국제 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진서 9단. [뉴스1]

6연승 끝에 농심배 우승을 차지한 뒤 인천국제 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진서 9단. [뉴스1]

신진서 9단의 농심배 6연승 우승은 중국의 쓰라린 반응을 자아냈다. 중국 선수들에 대한 분노와 낙담은 많고 충고와 격려는 찾기 힘들었다. 그 내용을 보자.

“나는 지금 프로 바둑시험을 준비하겠다. 80세가 되기 전에 신진서를 물리치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위빈이 국가대표 감독을 그만둘 때다. 구리가 감독을 맡아야 한다.”

“신진서는 신이 되었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커제를 중국의 영웅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을 모독하는 일이다.”

“바둑에서 지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의지를 잃는 것이 진정 부끄러운 일이다. 패기와 야망을 잃지 않는 한 한국을 따라잡을 기회는 있을 것이다.”

“신진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밖에 사람이 있고 세상 밖에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만들었다.”

중국 팬들은 국가대항전에 특히 열광한다. 중국은 바둑의 종주국이기에 왕좌를 다른 나라에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데 중국 최고의 기사들 5명이 신진서에게 줄줄이 패배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낙담한 나머지 반응은 오히려 신진서 찬양으로 흘러간다. 그 모습은 과거 이창호 9단이 농심배 연승 우승을 거둘 때의 데자뷔라고 할 만하다.

“한국은 이창호를 자랑하고 세계는 이창호에 의해 제압되고 있다. 동시대의 국수는 모두 이창호로 인해 눈물 흘린다.”

“내 우상은 이창호다. 나는 줄곧 그가 이기기를 바랄 뿐이다.”

“이창호를 가진 것은 한국의 행운이고 다른 국가엔 재앙이다. 이창호는 바둑뿐 아니라 인품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

“이창호는 이미 얼빠진 사람처럼 멍한 경지에 이르렀다.”

“석불을 존경한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

이창호 9단이 농심배에서 막판 5연승으로 우승했던 사건은 2005년 상하이에서의 일이었다. 2000년생 신진서는 당시 다섯 살. 바둑을 막 배운 때였다. 그로부터 근 20년이 흘러 다시 상하이. 상황은 그때보다 더 험악했다. 중국의 선봉 셰얼하오 9단이 파죽의 7연승으로 밀어붙이며 판을 장악했다. 한국과 일본은 5명 중 4명의 선수가 탈락했다. 이 대목에서 신진서가 출전해 셰얼하오를 꺾고 돌풍을 잠재웠다. (셰얼하오는 자기 몫을 200% 해냈으니 싸잡아 욕을 먹는 상황이 억울할 것이다.)

이후 신진서는 일본의 마지막 선수 이야마 유타 9단과 중국의 자오천위, 딩하오, 커제, 구쯔하오 까지 6명을 모조리 꺾었다. 자오천위는 중국 7위, 딩하오는 최근 LG배 우승자이고 신진서가 “가장 무서운 신예”로 주목해온 인물이다. 커제는 비록 랭킹 2~3위를 오가고 있지만, 이세돌 시대를 종식시키며 이른 나이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자다. 그리하여 맞이한 마지막 한판. 마지막 상대인 중국 1위 구쯔하오는 역시 난적이었다.

신진서는 말한다. “한때 역전당했지만 다시 보니 판이 아직 어지러웠다. 있는 힘을 다해 집중했다.”

“마지막 공배를 메우고 승리가 확정됐을 때는 막상 머리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디선가 해냈다는 부르짖음이 들려온 것 같기도 하다.”

바둑10결 중 신진서가 가장 좋아하는 항목은 10결의 첫 번째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 승부사라면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나 구쯔하오와의 마지막 판은 너무도 절실하게 이기고 싶었고 그 바람에 신진서도 크게 흔들렸다. 악마의 시험 같은 이 고비를 넘어선 것은 “운이 아니었을까”라고 신진서는 말한다.

신진서는 2000년생이다. 구쯔하오는 1998년, 커제는 1997년, 딩하오는 2000년생이다. 신진서는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어 앞길이 창창하다. 그게 신진서의 자랑이고 한국의 자랑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신진서의 압제를 언제까지 견뎌야 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억제하기 힘들 것이다.

신진서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본다. AI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AI는 현재 저의 바둑친구입니다”는 답이 돌아온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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