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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최초와 최고의 기념물, 조세르의 피라미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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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3000년에 걸친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피라미드의 시대는 고왕국 3~4왕조 200년간으로 짧았으나 그 상징성은 최고였다. 최초는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의 피라미드다. 상하 이집트 통일 왕국의 조세르(재위 기원전 2668~2649)는 풍부한 구리광산이 있는 시나이 반도를 점령해 본격적인 청동기 문화를 꽃피운 파라오다. 이전 왕들은 마스타바에 묻혔다. 지하에 관을 묻고 사다리꼴 단을 흙벽돌로 쌓은 형식이었다. 신과 동격이 된 조세르는 상징적으로 높고 견고해 영구한 무덤을 원했고 당시 재상 임호텝은 피라미드라는 획기적인 기념물을 발명했다.

공간과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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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의 출발은 단순했다. 넓적한 마스타바를 여러 층 쌓아 올리면 초고층 구조를 만들 수 있고, 돌을 잘라 벽돌과 같이 쌓으면 영구한 기념물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밑변 109m×121m, 높이 63m, 6개 층의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를 완성했다. 무거운 돌들을 일정 규모 이상 쌓아 올리면 윗돌에 눌린 아랫돌은 옆으로 튕겨 나가 결국 무너진다. 지하 묘실 위에 일단 한 단의 마스타바를 완성했고 그 위에 4개 층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쌓았다. 돌들을 수평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가운데 4층 높이의 코어 탑을 우선 쌓고, 코어에 기대 석재들을 수직으로 붙여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구조적 자신감을 얻어 다시 6개 층의 피라미드를 덧쌓아 4700여 년을 견딘 지금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천재 임호텝은 피라미드 주변에 장례장과 축제장, 신전들을 건설하고 1.6㎞의 성벽을 둘러 거대한 피라미드 복합지구를 만들었다. 지하 28m 깊이의 수직갱을 파고 내려가 묘실을 만들었고, 총길이 6㎞의 지하 미로 궁전을 조성했다. 지하와 지상, 두 개의 장례 도시와 피라미드의 원형을 만든 임호텝은 이집트에서는 기술과 예술의 신으로, 세계사에서는 최초의 공인 건축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피라미드는 진화를 거듭해 1세기 후 기자의 쿠푸왕 대피라미드로 완성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