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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되살린 독립운동가, 증손자와 함께 독립선언서 낭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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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14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 및 탑골공원 개선사업 선포식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구현된 105년 전 33살의 청년 독립운동가 정재용 선생(왼쪽)이 증손자 정연규씨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시민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최기웅 기자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 및 탑골공원 개선사업 선포식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구현된 105년 전 33살의 청년 독립운동가 정재용 선생(왼쪽)이 증손자 정연규씨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시민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최기웅 기자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自主)하는 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팔각정에서는 105년 전 3월 1일과 마찬가지로 33세 청년 독립운동가 정재용 선생(1886~1976)의 맑고 굳센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정 선생의 혈기 넘치던 33세 때 목소리다. 정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 대일(對日) 항쟁의 불을 지폈다.

AI 정 선생에 이어 그의 증손자인 정연규(33)씨가 무대에 올라 하늘에 계신 증조부의 의지에 화답하듯 낭독을 이어갔다. “조선의 독립은 하늘의 밝으신 명령이고, 시대의 추세이며, 모든 인류가 공존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정당한 권리를 발동한 것이다.” 정씨는 AI로 복원된 정 선생과 함께 여섯 문단으로 압축된 독립선언문을 세 문단씩 나눠 낭독했다. 그러자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감격에 찬 표정으로 “만세”를 외쳤다.

종로구와 광복회, 종로문화원이 공동 주관·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후원한 이날 3·1절 기념식은 첨단 AI 기술로 이처럼 한층 뜻 깊은 행사가 됐다. 서희숙 종로구 문화유산과장은 “정 선생의 후손이 정 선생의 생전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소중히 보관하고 계셨다”며 “그것을 받아 복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5년 전의 증조부처럼 올해 정확히 33세인 정씨는 행사 후 기자와 만나 “부모님께 교육받은 대로 항상 (증조)할아버지의 정신을 본받으려 힘썼다”며 “AI 기술로나마 (증조부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게 돼 무한한 영광”이라고 전했다.

105년 전, 정 선생이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 하루 전, 민족대표 33인 지도부는 같은 곳에서 독립선언을 하기로 한 기존 계획을 바꿔 인근 태화관 별실에서 이를 거행했다. 많은 시민이 모인 장소에서 거행할 경우 흥분된 분위기로 인해 일제 경찰과 충돌하면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예정된 거사 당일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 나타나지 않자 시민들은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이때 정 선생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았다면 3·1운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사학계의 분석이다.

한편, 이날 행사는 탑골공원 개선사업 선포식으로도 진행됐다. 독립운동가 후손 등 참석자들이 현재의 가설 담장을 허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종로구는 탑골공원의 원형을 되찾기 위한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지만 1967년 인근에 상가 건물이 들어서면서 사대문 가운데 서문이 없어졌다. 1983년 상가가 철거되면서 서문이 다시 세워졌지만, 원래 자리가 아닌 위치라 문화재적 가치를 잃었다. 이 서문을 원래 위치에 복원한다는 목표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민족 독립 염원의 터전인 탑골공원은 지금껏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역사·문화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었다”며 “고증을 통한 새 단장으로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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