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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선데이] ‘주관적’으로 행복해집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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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29면

민세진 동국대 교수

민세진 동국대 교수

한국 사람은 유독 다른 나라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한다고 한다. 한 달 남짓 전에도 한 미국 유명 작가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표현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교수는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한국에서 국수주의와 자국 혐오가 공존하는 가운데 빚어진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따금 필자의 휴대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놀라워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추천 영상이 뜬다. 주변에도 비슷한 경험이 꽤 있는 걸 보니, 한국에 살고 한국어로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관심 가질 만한 주제라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식하는 모양이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우리의 특징은 오랜 기간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오면서 ‘객관적’ 평가를 중요시하게 된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들 외부 평가에 민감
비교에 매몰되면 불행 자초
삶은 다양한 요소로 이뤄져
내 관점으로 장점·단점 봐야

ON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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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에 대학 생활을 보낸 필자가 다른 나라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 첫 번째 기회는 학생 할인으로 구독하게 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를 통해서였다. 아주 가끔 한국에 대한 기사가 났는데,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때가 1987년이라는 것을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알았다. 그간 학교에서 받아온 교육 내용과 달리 인생의 대부분을 독재국가에서 살았다는 깨달음이 당시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싶다는 생각에 외국인이 쓴 한국에 관한 책들도 읽었다. 그 중에는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가 2012년에 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도 있다. 이 책에서 튜더는 한국이 ‘변화에 대한 광대한 수용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지난 10여 년 동안의 변화로 책의 상당 부분이 옛날이야기 같다. 예컨대 중매를 통해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려 한다는 내용이 그렇다. 지금은 결혼에 대한 열망 자체가 사라진 듯 보이니 말이다.

튜더의 책이 한국을 외국에 소개할 목적으로 쓴 것이라면, 얼마 전 출판된 콜린 마샬의 『한국 요약 금지』는 한국인에게 읽히기 위해 한국어로 쓰인 책이다. 튜더와 마찬가지로 마샬도 한국에서 10년은 살았기에 단기 체류자의 평가에는 무덤덤한 필자도 관심을 갖고 읽었다. 초반부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한국의 좋은 점은 정확히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에만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이었다. 한국의 지인들이 저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묻는다고 한다. 이러한 불평 문화가 괴롭다고 하면서도 저자는 ‘서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43가지 이유’를 정성스럽게 써 놓았다.

마샬의 책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로 언급된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는 사람이 지위에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런 직관에 많은 한국인이 공감하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이 특히 한국에서 더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그 공감은 개인을 넘어 국가의 차원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다른 나라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유달리 궁금해 한다니 말이다. 문제는 지위에 대한 갈망이 끊임없는 비교로 인해 종종 불안과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업 등의 조직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울 때 사전 작업으로 SWOT 분석이라는 걸 많이 한다.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ies), 위협(threats)을 의미한다. 강점과 약점은 객관적 비교를 전제로 한다.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기업은 냉정하게 강점과 약점을 봐야 한다. 하지만 매일의 생활을 영위하는 개인이 비교에 매몰되면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게다가 삶의 요소는 정말 다양한 데 반해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측면은 극히 일부분이고 주로 금전적인 것들이다. 객관적 평가를 중요시하는 자체가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객관적 평가는 헛된 자부심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발전을 자극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객관적’ 평가란 것 때문에 외국인의 눈에 한국이 우울하고 불안한 나라로 비치고,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느낀다면 이제는 ‘주관적’으로 행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강점과 약점이 아닌, 내 관점의 장점과 단점을 자기 개발의 바탕으로 주목하는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민세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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