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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30년 세월을 탈 없이 건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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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호 31면

‘한 컷 반’ 시리즈 가운데, 1986 ©최광호

‘한 컷 반’ 시리즈 가운데, 1986 ©최광호

한 장의 사진 안에, 완전한 한 컷과 잘린 반 컷이 함께다. 한 컷 안에 찢긴 그물의 구멍과 반 컷 속 산과 하늘 사이의 허공이 나란하다. 겨우 반 컷이 더해졌을 뿐인데, 한 컷이 지니고 있던 정의 가능한 맥락이 예측 불허로 뒤바뀐다. 한 컷과 반 컷, 완전과 불완전, 연결과 대비로, 한 장의 사진이 품은 내연이 사진 프레임 밖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사진가 최광호가 1986년에 찍고 같은 해 일본 니콘살롱에서 전시로 발표한 이 사진은 ‘한 컷 반’이란 제목 그대로 사진 한 컷과 반 컷을 연결해 한 장의 사진으로 갈무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진계에서 데뚝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작가의 초기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일본 유학 중이던 작가가 이와 같은 형식을 시도한 것은 열도의 작은 섬 ‘카미시마(神島)’에서였다. 당시 오사카예술대 사진과에 재학 중이었고 이듬해 동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사진 전공을 앞두고 있었지만, 사진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그는 기존의 표현 방식 너머가 궁금했다. ‘신이 사는 섬’이라 불리는 섬 구석구석을 다니며 풍경과 인물, 사물 한 컷을 찍고 그것을 기억했다가 연결되는 다른 이미지를 찍어 한 컷 반으로 인화했다. 묶인 채로 상대를 응시하는 한 컷 안의 흰 개가 반 컷의 수국과 만나고, 한 컷 안의 수평선이 반 컷의 기울어진 백사장과 만난다.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 컷과 반 컷으로 분리된 채 연결되자, 단일하던 실재의 재현이 다층적인 의미와 해석으로 변주되어 떠올랐다.

“사진을 넘어 뭔가 다른 세계로 간다는 느낌을 그때 받았다.”

최광호의 전위적인 작업들 즉 자신의 몸을 감광 오브제로 사용한 포토그램, 빛의 파장과 발색제를 이용하거나 기존 은염사진의 은을 녹슬게 하여 금속성을 부여하고 필름을 오리거나 인화물에 구멍을 뚫어 사진의 경계를 허문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보여준 숱한 ‘다른 세계’, 그 실험과 탐구의 처음에 ‘한 컷 반’이 있는 것이다.

서른 살의 작가가 직접 인화한 사진들이 세월을 탈 없이 건너, 현재 빈티지로 전시되고 있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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