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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획정과 게리맨더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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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5대 부통령 엘브리지 게리는 독립선언서에도 이름을 올린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은 그를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으로만 기억한다. 1812년 메사추세츠 주지사였던 게리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신화 속 괴물 샐러맨더와 비슷해 ‘게리맨더링’이라고 불렀다. 당시 공화당은 야당보다 적은 표를 얻고도 의석수에선 29대 11로 압승했다.

의회가 선거구를 정하는 미국에선 지금도 ‘게리맨더링’이 여전하다. 텍사스 35번 선거구는 긴 소총 모양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메릴랜드 3번 선거구는 한 가운데가 뻥 뚫려 있다. 앨라배마와 미시시피 등 백인 비율이 높은 남부 지역에선 흑인 밀집지역을 하나로 묶어(packing)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한다. 선거구 획정은 늘 정치적으로 논란이 커 일본에선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의 ‘하토만다’(1954년), 아일랜드에선 제임스 털리 지방행정장관의 ‘털리맨더링’(1973년)이 악명 높다.

국회가 선거구를 정하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을 놓고 온갖 셈법이 난무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총선 1년 전까지 선거구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D-41일인 어제(2월 29일)서야 완료했다. 기 싸움을 벌여온 여야는 인구변화에 따라 일부 선거구를 통폐합하라는 중앙선관위의 권고와 달리 애꿎은 비례대표 의석만 줄였다. 영국이나 호주·캐나다처럼 의회가 아닌 독립기구가 선거구를 정한다면, 이 같은 졸속 처리는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