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시니어급 >> 스리쿠션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잘나가는 임원의 공통점요? 친절한 태도, 탁월한 의사소통 능력,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이죠." 국내 굴지 기업 전략실에 근무하는 김모 차장의 말이다. 최고위층은 그중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같은 기업의 김모 부사장은 "임원에겐 전문성보다 소통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한 초임 임원에게 생소한 일을 맡겼습니다. 허둥댈 줄 알았는데 웬걸요. 콘텐트 개발은 부하에게 맡기고, 자신은 관련 부서장들을 찾아다니며 일이 '되게' 만들어 놓더군요. 사람들이 한 조언을 결과물에 적절히 반영해 '이 친구가 내 말을 허투루 듣진 않았군' 하는 반응도 이끌어내고요."

보고서가 아닌 다른 방식의 자기 홍보는 신중할 일이다. "누가 뭘 해냈다 하면 소문이 쫙 나게 마련입니다. 굳이 자기 입으로 떠들 필요가 없죠. 상사 중에는 쇼잉(showing)하는 부하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LG그룹 모 임원의 말이다. SK그룹의 한 고위 인사는 "최고의 자기PR은 스리쿠션"이라고 말했다. "공은 상사와 부하에게 돌리고, 내 칭찬은 회사 밖 유력 인사의 입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최고수"라는 것이다.

자기 관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사내에선 유명인사인 만큼,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잘 안 하거나 식당에서 큰소리로 떠든 것마저도 소문이 나기 일쑤다. 평판은 인사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몇 년 전, 제 역할이 커지는 게 불안했던지 바로 윗분이 절 날리려 무척 애쓰셨습니다. 그런데 그분께 제 험담을 들은 사람들은 곧바로 제게 전화해 내용을 알려주고 대신 분개까지 하더군요. 전 물론 한마디 대꾸도 안 했죠. 결국 살아남은 건 저였습니다." 모 그룹 고위 임원의 경험담이다. 평소 사내외 인사들과 깊은 신뢰를 쌓아온 것이 결정적이었지만, 그가 상사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인사라는 걸 주위 사람들이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타고나길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은 어떻게 할까. 재계의 한 고위 인사는 "정치적 행위 또한 일이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획안만 잘 만들면 능사인가요. 일이 풀리도록 만들어야죠. 안 되는 사람이 억지로 아부하고 술자리를 만들면 피차 더 피곤해집니다. 어떻게든 자기 스타일에 맞는 소통 방식을 찾아내야지요."

이나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