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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정훈의 푸드로드

진화하는 단백질 푸드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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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동서양의 옛 유물을 보면, 꽤 살이 붙은 모습이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부러운 시절이다.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은 깡마른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21세기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순간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마른 체형에 적당한 근육을 갖춘 모습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더 이상 여성만의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20~30대 한국 남성들을 중심으로 건강 관리의 수준을 넘어선,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욕망이 확산되고 있고, 이 욕망은 음식 구매 및 섭취 행동에도 많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20~30대 칼로리 섭취 달라져
탄수화물 줄이고 단백질 늘려
단백질 바, 닭가슴살 소비 급증
맛과 식감까지 높이는 게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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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 관련 최근 통계 수치를 들여다보면,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의 2021년 기준 과거 10년간 자료에 따르면 19세 이상 한국인 1인당 칼로리 섭취에서 탄수화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한 반면, 단백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하였다. 이 경향은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쌀 섭취를 줄이고 육류 섭취를 늘린 섭취 행동 변화가 만들어 낸 결과다.

또 다른 흥미로운 자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체력 유지를 위해 규칙적인 체육 활동을 하는 비중은 2013년에 36.4%였다. 코로나가 극성이었던 2021년에는 건강에 대한 우려로 42.8%까지 올랐다가, 포스트 코로나인 2022년에는 39.0%로 감소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든 후 규칙적인 체육 활동을 줄인 것이다.

그런데 20대 남성들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들이 규칙적인 체육 활동을 하는 비중은 2021년 50.4%에서 2022년엔 더 증가해 51.3%로 나타나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30대 남성들도 비슷한 수치를 보이며 체육 활동을 늘였다. 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건강한 아름다움이며, 과거 남성성의 상징인 보디빌더의 울룩불룩한 근육이 아닌, 미세한 근육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규칙적인 체육 활동과 함께 단백질 섭취의 증가로 나타났는데, 문제는 육류 단백질의 섭취가 늘어남에 따라 의도치 않게 지방에서 오는 칼로리 역시 증가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칼로리 섭취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19.7%에서 2021년 23.5%로 증가했고, 최근 이 지방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식품 구매 행동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우유나 콩(대두)에서 순수하게 추출한 단백질을 원재료로 만든 식품의 구매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 대표적인 식품으로 견과류나 다른 원료들과 배합하여 만든 단백질 바(Bar)가 있다. 단백질 바는 꽤 오래전에 출시되었으나 국내 시장의 성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장 규모가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운동하면서 음용하는 단백질 음료 시장이 편의점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추출 단백질은 아니지만 다양한 닭가슴살 가공품 역시 코로나 발발 이후 그 시장 규모를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음식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주로 혼자 섭취하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또 다른 손에는 단백질 바를 들고 ‘혼밥’하는 것은 청년들에게는 익숙한 섭취 행동이지만, 모든 끼니를 이렇게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 식사에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기며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는데, 이런 혼밥 음식들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근 나타나고 있는 시장 수요는 밥이나 면 등의 일상식 형태의 음식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탄수화물을 낮추고 단백질의 비중을 올리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새로운 단백질 푸드테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단백질 함량이 거의 전무한 백미의 단백질 함량을 올리면 식감이 푸석해져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안남미(安南米) 계통의 품종이 그러하다. 이에 최근 우리 입맛에 맞는 고(高)단백미를 육종하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고 시범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 적정 조리 및 가공 관련 푸드테크가 필요하다. 파스타의 단백질 함량을 올리기 위해 대두 단백질의 함량을 무작정 늘렸더니 단단한 고무를 씹는 듯한 끔찍한 식감이 나왔다.

미래의 핵심 푸드테크의 방향은 명쾌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는 식사의 영역에서 음식의 단백질 함량을 늘리면서, 동시에 기대하는 맛과 식감을 만들어 내는 단백질 푸드테크가 우리 식생활과 식품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