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博施濟衆(박시제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제자 자공이 “널리 베풀어 여러 사람을 구제하면 어질다고 할 만합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어찌 어질다고만 하겠느냐? 성스러운 경지이다. 요·순 임금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던 부분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널리 베풀어 여러 사람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병원에 서예작품으로 더러 걸려 있는 구절이다.

博: 넓을 박, 施: 베풀 시, 濟: 구제할 제, 衆: 여러 중. 널리 베풀어 여러 사람을 구제한다. 25x74㎝.

博: 넓을 박, 施: 베풀 시, 濟: 구제할 제, 衆: 여러 중. 널리 베풀어 여러 사람을 구제한다. 25x74㎝.

베풀고서도 전혀 생색을 내지 않는 게 진정한 베풂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선행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고 했으며, 부처님도 드러나지 않게 촛불 하나 켠 것이 수천, 수만의 ‘무진등(無盡燈: 다함이 없는 등불)’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행복의 빛을 주는 공덕이라야 ‘무량공덕(無量功德)’이라고 하였다. 나는 베푼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는 그만큼 베풀지 않으면 섭섭하다. 섭섭하면 사랑이 떠난다. 그러므로 기억하는 ‘생색’의 베풂은 베풀지 않음만 못하다. 베풂은 생색이나 이익이 아닌 사랑과 성스러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익은 저절로 따라 온다. 병원에 ‘박시제중’이라고 쓴 서예작품이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 “널리 베풀어 여러 사람을 구제”하려면 그만큼 의사 선생님 수도 많아야 하지 않을까.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