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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이사(李斯)

중앙일보

입력

지록위마. 바이두

지록위마. 바이두

“유능한 사람은 화(禍)를 복(福)으로 바꿀 수 있다는데, 승상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진시황 영정(嬴政)의 환관 조고(趙高)가 범죄 공모를 목적으로 승상 이사(李斯)에게 던진 질문이다. 위협보다는 유혹에 가깝다. 그 내용은 역모 그 자체였다. 순행(巡行) 도중 지금의 허베이(河北) 성에서 사망한 진시황의 유지(遺志)를 조작해, 우둔한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강직한 큰아들 부소(扶蘇)가 황제가 되면, 그와 사이가 소원한 이사의 지위도 위태로울 것이라며 말이다.

이사와 공모해 부소를 제거하고 진시황의 우둔한 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세운 후, 환관 조고는 다시 교묘한 술책을 부려 걸리적거리는 승상 이사까지 제거한다. 드디어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다. 조고는호해를 심리적으로 조종하고 자신의 판단력까지 불신하게 만들 목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하나 연출한다. 궁정에서 ‘사슴 한 마리를 호해에게 선물하며 말이라고 우겨본다’라는 컨셉이었다. 이 이벤트 당일 현장에 동원된 고관대작들은 조고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웠다. 호해가 말이 아니고 ‘사슴’이라고 부정했지만,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이라고 외쳤다.

이번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지록’은 ‘사슴을 가리키다’라는 뜻이다. 뒤의 두 글자 ‘위마’는 ‘말이라 칭하다’라는 뜻이다. 이 둘을 합치면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칭한다’가 된다. 이 네 글자는 쿠데타의 이름이기도 하다. 환관 조고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끝내 천하의 모든 권력을 접수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긴 내전(內戰)으로 날이 밝던 전국(戰國)시대를 어렵게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했던 진 제국이 서둘러 망국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악인 조고를 발탁하고 신변에 가까이 둔 이는 바로 진시황이었다. 조고의 위장술이 워낙 뛰어났을까, 말년에 진시황의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어두워져서였을까.

인간사 선악의 기준은 꽤 모호하다. 그러나 조고는 중국사에서 ‘제 자식을 삶아 바치며’ 아부하는 역아(易牙), ‘지옥에서 온 고문관’ 삭원례(索元禮) 등과 함께 ‘악인전’에 자주 실린다. 조고는 환관인지라 권력의 틈새에 사냥개처럼 예민한 후각을 지녔고, 특히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구밀복검(口蜜腹劍)에 능했다.

한편, 승상 이사는 어떤 인물일까. 대체 그는 왜 악인 조고가 파놓은 함정에 매번 그렇게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까. 비록 조고라는 희대의 악인과 노년에 손을 잡았지만, 그는 유능한 행정가였다.

젊은 시절, 그는 우리에게 ‘성악설(性惡說)의 순자(荀子)’로 잘 알려진 유교 사상가 순경(荀卿)에게서 덕치주의와 법치주의의 융합 가능성 등 고급 학문을 배웠다. 저술가로 그친 비운의 천재 한비자(韓非子)가 그의 동창생이다. 한번은 영정이 한비자의 법가(法家) 저서에 매료되어 중책을 맡기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사는 영정과 한비자 사이를 이간질한다. 자신을 친구로 믿고 의지하던 한비자를 완벽하게 기만한다. 한비자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치밀함도 대단했다. 한비자는 진나라 옥중에서 이사가 건넨 독을 마시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의 술책을 몰랐을 정도였다.

이처럼 능수능란한 가해자가 거꾸로 노년기에는 요실금을 앓는 늙은 환관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피해자로 바뀐다. 수개월에 걸친 집요한 강제 자백 심문과 장난질 능욕과 혹독한 고문까지 당한 후에 큰길에서 허리와 코가 잘리는 그런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반역이라는 큰 누명이었기에 삼족도 멸해졌다.

승상 이사는 중국 역사상 꽤 흥미로운 인물이다. 법가 행정가로 꾸준히 능력을 발휘했다. 천하 통일이라는 성취감도 맛봤다. 진 제국의 ‘넘버 투’라는 지위에도 오래 머물렀다. 그런데도 ‘가진 것에 대한 집착’과 ‘애매한 처신’의 인물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그는 몇 차례 기꺼이 선을 넘고 ‘악의 축(axis of evil)’에 다가가 제 몸을 실컷 비볐다. 그 측은한 끝맺음의 단초는 이미 자신 안에 있었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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