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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과 피학의 모래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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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중 소설가

김성중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장편은 항상 단숨에 읽는다. 『고양이 눈』(민음사, 2007)은 다섯 번째로 읽은 그녀의 소설인데, 읽는 도중에 문득 깨달았다. 이 강렬한 몰입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단 재미있고, 엄청난 현재형으로 가슴을 조여 오기 때문에 달아날 수 없다. 이 현재형은 ‘임박한 사태’를 생생하게 실어 나르고, 주인공의 인생에 영원히 작동할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감을 품게 한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이 책에 끌린 것은 ‘소녀들의 잔인성’을 다룬다는 소개 글을 접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관계는 정말로 위협적이다. 경계침범적이고, 사랑과 증오를 섞어 서로를 복사해버린다. 이런 관계를 그려낸 소설이 여럿 있지만, 『고양이 눈』은 특히 가학과 피학에 초점을 맞췄다. 아홉 살 일레인은 처음 생긴 또래의 여자 친구 무리에 동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 때문에 코딜리어가 가하는 잔인함을 수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실리는 폐쇄적인 권력에 갇혀, 말 그대로 죽기 직전에서야 구조된다. 반면 어린 폭군이었던 코딜리어는 청소년기가 되자마자 모래시계를 돌려놓듯 정반대의 상황에 부닥친다. 일레인이 코딜리어에게 잔인한 말들을 사격 연습하듯 퍼부어대는 사이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백미는 폭력 자체가 아니라 폭력의 기원으로 올라가 두 소녀를 동일한 수치심, 소망, 외로움과 두려움에 포개놓는 데 있다.

일레인과 코딜리어를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또 다른 소녀들이 있다. 릴라와 레누.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주인공들 말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에는 평생에 걸쳐 동경과 질투, 그리움을 나누는 관계를 묘사했다. 『고양이 눈』은 우정이 아니라 ‘증오’에 초점이 맞춰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친구-적’의 관계가 정체성 형성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조명한다. ‘너’를 통과한 ‘나’의 이야기는 사실, 모든 소녀와 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