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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우리들 발 밑에 있는 지구 속의 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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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우리 현대인은 “지구는 둥글다”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생각 없이 되풀이한다. 사실은 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다. 산맥 등 표면이 울퉁불퉁한 곳들을 무시하고 보는 전반적 모양은 적도 부분이 더 불룩한 타원형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그 원심력으로 인하여 가장 이동 속력이 빠른 적도 부분이 밖으로 내쳐지면서 모양이 납작해지는 것이다. 이론은 그런데 실제로 측정하여 지구의 정확한 모양을 알아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약 200년간 많은 논란을 거친 후에 20세기 초반에 와서야 과학자들은 지구의 정확한 모양에 대하여 동의하게 되었다.

지구는 완벽한 구형 아닌 타원형
지진파 통해 지구 속 구조 알아내
지구와 행성 대충돌로 달 생성돼
달의 광물질 지구와 상당히 유사

지구 중심에서 표면까지 6000㎞

우주 속에 떠 있는 달과 지구. 행성 테이아와 지구의 충돌로 달이 생겨난 것이란 연구가 있다. [사진 셔터스톡]

우주 속에 떠 있는 달과 지구. 행성 테이아와 지구의 충돌로 달이 생겨난 것이란 연구가 있다. [사진 셔터스톡]

더 미묘한 것은 지구 내부의 밀도였다. 지구라는 땅덩이가 왜 둥글게 뭉쳐 있는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뉴턴이 17세기에 내놓았던 중력이론에 기반한다. 지구를 구성하는 입자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렇다면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물질이 더 압축되어서 밀도가 높아지리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들어가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지구의 반경, 즉 중심에서 표면까지의 거리는 6000㎞가 넘는데, 인간이 아무리 힘을 다해서 유전을 파도 겨우 10㎞ 남짓한 것이 현재 한계이기 때문이다. 표면을 긁는데 그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 지구과학자들은 지구의 내부 구조에 대하여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사람이 지구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관측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간접적 방법으로 추론해낼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진을 관측하는 것이다. 지구 위 어디에서 지진이 나면 그 지진파는 지구 속을 통해 퍼져 나간다. 큰 지진이 나면 지구 전체가 종이 울리듯이 진동한다고 한다. 세계 여러 곳에 설치된 지진 관측소들 간에 긴밀한 협력을 하면 지진파가 어느 지점에 얼마만한 시간이 걸려서 도착하는가를 관찰할 수 있다. 그러한 관측에는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지진뿐 아니라 인간들이 하는 핵실험도 크게 일조하였다. 땅속에서 원자폭탄을 터뜨리게 되면 지구가 확연히 흔들린다. 지진의 진원지는 사실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핵실험에서 일어나는 폭발은 어디서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폭발의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기에, 어떠한 지진파가 일어날지도 예측이 가능하고 그 지진파가 퍼지는 모습을 잘 보면 지구의 내부 구조를 정확히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깊이는 같은데 고밀도 지역 존재

그렇게 정밀하고 체계적인 관측을 해 보고 알게 된 것은, 지진파가 지구 내부를 통과해서 갈 때 그 속도가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진파의 속도는 통과해 가는 물질의 밀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관측 결과 뉴턴의 중력이론이 예측한 대로 지구 중심층의 밀도는 표면층의 밀도보다 약 3배나 높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내용 중 예기치 못했던 것도 있다. 밀도의 변화가 단순히 깊이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구 안에는 같은 깊이에 있는 곳에 비하여 훨씬 밀도가 높은 지역들이 있다는 것이 1980년대에 밝혀졌다. 그런 곳이 지구 속 상당히 깊은 부분에 두 군데 보이는데, 규모가 엄청나서 달의 크기보다도 더 크다. 지구 속에 왜 그런 거대한 규모의 이물질이 박혀 있을까.

다른 위성과 구별되는 달의 특이성

여기서 달을 언급하는 데는 또 이유가 있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 주위를 도는 위성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 지구의 달은 아주 특이하다. 첫째, 다른 위성들과 달리 달은 지구보다 그리 아주 작지 않다. 궤도도 좀 이상한 각도이다. 또한 달의 광물질 성분은 지구와 상당히 비슷하다. 다른 행성에 딸린 위성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달의 특유함을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억측으로 내놓은 가설이 있다. 태양계가 형성되던 초기에 화성만큼이나 큰 다른 행성이 지구와 대충돌을 하면서 달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테이아(Theia)라 명명된 그 가상의 행성이 지구를 들이받았을 때 지구의 한쪽 면은 산산조각이 나서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고, 그 부스러기들이 다시 중력으로 뭉쳐서 달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인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가상의 행성 테이아의 흔적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상 행성 지구에 박혔을 수도

그런데 지구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한 팀이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그 지구 내부에 있는 밀도 높은 지역들이 바로 테이아가 지구와 충돌 후 산산이 조각나지 않고 두 개의 큰 덩어리로 지구 속에 박힘으로써 형성되었을 것이라 한다. 이 연구팀은 충돌에 대한 모델링을 잘해내었으며, 테이아가 철을 많이 포함했다는 가설을 통해 지구 속의 고밀도 부위를 설명하고 달에서 가져온 바위에 철분의 함량이 높았다는 잘 알려진 분석 결과도 같이 수렴했다. 이들의 연구는 지구 속의 이물질과 달의 특이함을 동시에 설명하는 기가 막힌 추론을 통해 테이아 가설의 신빙성을 크게 높여주는 성과를 이루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과학자 고병관 박사가 그 연구에 참여하였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생각하다 보면 지구가 참 신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간들은 어떤 일에는 굉장히 신경을 쓰면서도 또 다른 많은 일에 대해선 생각 없이 살아간다. 사람들은 일생의 거의 모든 순간을 땅에 붙어서 살면서도 그 땅덩어리가 정확히 어떤 형태이고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한 내용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과학하는 마음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