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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윤의 아트에콜로지

무라카미 다카시의 교토 입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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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2월의 한적한 일본 교토(京都)에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가 떴다. ‘전시가 열렸다’는 말이 조금은 무색할 정도로 떠들썩한 블럭버스터급 전시다. 교토 근대화의 상징인 오카자키라는 지역에서 1933년 개관한 교토시립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일본의 세라믹회사이자 ESG 문화 경영으로 유명한 쿄세라기업이 최근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통해 50년간 타이틀을 가져온 미술관으로 더욱 주목받는 곳이다.

교토시립미술관은 에도 막부가 수립된 1603년부터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1868년 사이의 일본 문화 융성기의 유물과 역사를 담은 미술 컬렉션이 가장 많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크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적어도 일본 작가들에게는 이 곳에서 전시한다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만화적 이미지로 세계적 명성
세계적 팝아티스트의 전시회
대중문화와 고급예술의 융합
일본 전통의 도시를 흥분으로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무라카미 좀비’.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무라카미 좀비’.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이 미술관에 흔히 ‘루이뷔통 작가’라고 알려진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전시가 온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만화 이미지로 만든 새로운 로고 타입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다. 필자가 ‘교토 입성’이라고 말했지만, 작가에게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던 전시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는 같은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다음의 지명도가 있을 만큼 중요한 작가라는 입장에선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쿠사마 야요이나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은 일본 국립미술관이나 공공미술관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2000년 이후 창의적 상상력을 선보인 여성작가로서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전 세계와 일본 미술계로부터 열광적 반응을 끌어냈다. 하지만 무라카미 다카시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그가 만든 ‘슈퍼 플랫(Super Flat)’이라는 작품은 일본 특유의 ‘오타쿠’적 망가(만화)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다. 상업적이고 외설적이기까지 한 그의 작품은 현대 일본 작가 중 가장 뜨거운 논란의 중심이 됐다. 즉, 아카데미 영역에서는 그를 주류 작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다. 지나치게 상업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끝이지 않았으며, 그가 유명해진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강력하고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와 컬렉터들의 열기는 대단하다. 그의 작품 가격이 치솟다 보니 일본 내 미술관이 함부로 구입할 수도 없게 된 상황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술계의 열전(熱戰)이라고 해야 할까.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다카시

[사진 이지윤]

[사진 이지윤]

이런 상황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는 유서 깊은 교토시립미술관에서 대형 신작을 소개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 수립으로부터 시작된 일본 문예 부흥의 보물들이 모여있는 이 미술관의 전시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이다. 그는 170점의 작품과 함께 일본의 국보로서 17세기 에도시대의 풍경을 그린 병풍화를 3~4배 키워 재구성한 대형 신작을 소개했다.

오타쿠적 사고에서 시작돼 일본 하위문화(서브컬처)로 향하는 그의 집요한 관심은 어떤 면에서는 이제 점차 새로운 미술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당당히 일본 미술을 대변하는 새로운 예술 언어가 된 듯도 하다.

대담한 정치적 발언을 만화 같은 언어로 구사하는 것이 우리 MZ 세대의 감성에 어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만화 같은 ‘플랫’, 즉 감정을 배제한 일방적이면서도 해학적이고, 심지어 유아적이기까지 한 언어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매우 평면적인, 매우 납작한’이라는 뜻의 ‘플랫’이라는 용어는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로 나타낸다는 아이디어를 내포한다. 이는 일본의 현대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일본 전통문화에도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일본 목판화에서도 이런 시각적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의 미술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슈퍼 플랫 선언문’을 발표하고, 지난 20년간 꾸준히 진행한 그의 행보에 있다. 고전적인 일본의 전통 예술과 현대 대중문화 사이에서 발견되는 디지털 이미지를 결합하고 융합해서 새로움을 창조한 것이다. 어쩌면, 순수한 고급미술과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를 흐려놓으며 미래에 남을 새로운 일본의 서사를 만들고 있는 기발한 악동이 아닐까.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