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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동 산유국 쟁탈전 닮았다, 서기 1만104년의 암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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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호 19면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도스토옙스키가 쓴 세기의 걸작소설 『악령』을 읽을 때 첫 줄부터 턱 막히는 사람들이 많다. 스쩨빤 트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 같은 인물들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렵기 때문이다. 이름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 ‘듄:파트2’가 딱 그렇다. 이름들이 귀에 들어 오지 않으면 영화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는다. 특히 ‘퀴사츠 헤더락’이란 말과 개념이 그렇다. 예컨대 이런 말을 익숙하게 알아 들어야 한다.

감독 드니 빌뇌브, 가장 원작처럼 구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2’. 티모시 샬라메의 남성적 매력이 물씬하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2’. 티모시 샬라메의 남성적 매력이 물씬하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퀴사츠 헤더락은 프레멘들에게는 종종 마디(Mahdi·메시아)라고 불리는데 그들에게는 그 두 단어 모두 오랜 동안 리산 알 가입과 같은 존재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수백년 전부터 퀴사츠 헤더락의 출현을 예고하고 준비해 왔다. 우주의 주요 가문 중 하나인 아트레이더스의 레토 공작은 하코넨이 운영하던, 듄(砂丘) 행성 아라키스를 대신 통치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든다. 레토 공작의 여자이자 베네 게세리트의 일족인 레이디 제시카는 둘의 아들 폴이 퀴사츠 헤더락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듄 행성은 스파이스란 물질이 풍부한데 서기 1만104년인 현재, 우주의 제국들은 이 스파이스를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중이다. 듄 행성의 원주민들은 프레멘들이며 이들은 하코넨의 철권 통치에 저항하며 살아 왔다. 황제의 계략으로 아트레이더스 가문은 멸족이 되고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와 함께 간신히 살아 남은 폴은 프레멘을 이끌고 저항군의 리더가 된다.”

‘듄:파트2’의 가장 큰 적은 어쩌면 전편인 ‘듄 파트1’이다. 많은 관객들은 이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아직 잘 알아 듣지 못하고 있으며 이름들을 외우지 못하고 있는 데다, 가장 큰 문제는 1편이 잘 기억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2편을 보기에 앞서 ‘듄 1편’이 어떤 얘기였는지 묻는다. 그리고 원작 소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나 프랭크 허버트의 대하 소설 『듄』은 하드 커버 양장본으로 총 6권 짜리다. 1권만 해도 940쪽이 넘는다. 이런 어마어마한 소설은 현대인들로서는 읽을 시간도, 읽어낼 재간도 없다. 순전히 드니 빌뇌브가 재창조해 낸 영화로 이를 요약 간파해 내야 한다. 그게 낫다. 그러니 처음에 다소 어렵고 낯설더라도 이야기의 줄기를 잡아 내려고 애쓸 수 밖에 없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드니 빌뇌브의 재능이 이를 알기 쉽고 재미있는 얘기로 풀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를 압도적인 로케이션 촬영(요르단과 아부다비의 실제 사막)과 정교한 CG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건 전설의 감독 데이빗 린치가 1984년에 같은 원작의 영화(한국 비디오 출시 제목은 ‘사구’였다.)를 만들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데이빗 린치가 이 소설을 매우 관념적이고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마냥 철학적 SF로 풀어 낸 이유이다. 드니 빌뇌브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영화를 원작과 가장 근접한 모습으로 재창조해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이자 스토리텔링의 능력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름길은 소설이 쓰여진 년도에 대해 아는 것이다. 프랭크 허버트는 이 소설을 1965년에 썼다. 키워드는 1965다. 1960년대 중후반은 오일 머니 붐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직전이며, 이를 눈치 챈 세계 각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중동 산유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던 때이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가 ‘베네 게세리트’처럼 곧잘 예지 능력을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응당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니까 소설이 탄생한 1965년의 시대를 반영한 작품이 바로 ‘듄’이라는 얘기다.

영화 속 프레멘들은 곧 베두인 족이다. 지금의 이집트·시리아·이라크·사우디 아라비아의 원조 민족이다. 베두인들은 사하라 사막에 퍼져 살면서 이 지역의 문명을 오랫동안 지배했지만 지금은 중동 각국(듄의 제국)으로 나뉘어진 피지배 민족이 됐으며, 중동 각국은 중동 각국 대로 미국·러시아·영국 등 강대국(듄의 황제국)에 종속된 나라가 됐다. 그건 모두 순전히 석유 채굴(듄의 물질 스파이스)때문인데 작품 듄이 구상하고 예상한 내용은 그것과 한치의 차이도 없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1984년 영화 ‘듄’.

데이빗 린치 감독의 1984년 영화 ‘듄’.

1965년이나 2024년 현재나 1만104년의 미래 시점이나, 그리고 그곳이 지구이든 아라키스 행성이든 혹은 우주 전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퀴사츠 헤더락의 존재를 기다린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사람들은 늘 메시아를 찾아 나선다. 자신들의 현재적 삶이 불운하고 어둡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세의 불행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나 알라가 나타나 한방에 세상과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신념은 흔히 종교로 변하기 마련인데, 인간이 갖는 종교적 성향은 8000년 후인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영화는 보여 준다. 1965년 산유국 쟁탈 전쟁, 아라비아 사막, 오일 머니의 득세, 이슬람의 극단화, 성전이라 불리는 기이한 전쟁의 상황 등은 영화 ‘듄’ 시리즈를 보면 모두 이해가 되며 더 나아가 그같은 상황이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하게 만든다.

주목할 것은 드니 빌뇌브가 향후 3편에서 이 퀴사츠 헤더락, 곧 지도자이자 리산 알 가입으로 추앙받는 폴을 어떤 정체성으로 그려 나갈지에 대해서이다. 2편에서 폴은 확실한 권력욕을 보여 준다. 폴은 자신의 가문이 멸족되고 사구 지역으로 피신해 오면서 프레멘의 전사로 키워진 여자 챠니(젠데이아)와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맺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너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가 자신들의 사랑을 해칠 것이라는 걸 안다. 남자는 정치권력을 쥐거나 가지려는 순간, 스스로 혁명에 도취하는 순간, 여자와의 사랑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29살 티모시 살라메, 남성적 매력 과시

폴은 엄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가 파놓은 그물망 같은 운명의 행보를 거부하는 척, 사실은 프레멘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의 전적인 지지와 숭배로 그들 모두의 ‘마디(메시아)’로 자리 잡으려 한다. 그런 면에서 폴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이중적이다. 폴은 황제(크리스토퍼 워큰)를 폐하고 그의 딸인 이룰란 공주(플로렌스 퓨)와의 정략결혼을 예고한다. 혁명가 폴은 전사이자 혁명 동지인 챠니 대신해 이룰란을 선택한다. 챠니는 그런 폴을  버릴 것인가 계속 사랑할 것인가. 혁명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영화 ‘듄:파트2’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테마이다. 어쨌든 드니 빌뇌브는 지도자이자 메시아인 폴의 변질과 추락을 일부 담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그건 1980년의 이란 혁명이 지나친 이슬람 근본주의로 변질 돼 중동 지역을 분열시킨 것과 같은 상황일 수 있다. 영화에서 프레멘들이 폴을 향해 칼을 높이 치켜들며 리산 알 가입을 연호하는 모습은 이란 군중들이 하늘을 향해 소총을 쏘아 대며 호메이니를 연호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그들은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고 미국인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리고 석유를 무기로 세계 전체와 싸우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리산 알 가입으로 추대된 폴이 황제와 황제의 휘하를 인질로 잡고 자신을 최고 권력자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제국 군대와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은 그때의 상황과 닮아도 너무 닮아 보인다. 레이디 제시카는 폴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배 속 딸 아이(안야 테일러 조이)에게 속삭인다. “네 오빠가 성전(지하드)을 시작했단다.” 따라서 ‘듄:파트2’는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다분히 이슬람적이다. 3편에서는 분명 이걸 뒤집으려 할 것이다. 이번 2편의 마무리에서는 그 조짐이 보인다.

올 스타 캐스팅 때문에라도 ‘듄:파트2’는 매력이 철철 흐른다. 29살의 티모시 살라메가 남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 영화의 인기를 드높일 것이다. 젠데이아는 확실한 스타덤에 올랐고 레베카 퍼거슨은 베네 게세리트의 주술을 얼굴에 타투로 새기고 나온다. 퍼거슨은 아마도 이 영화의 출연을 위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하차했을 것이다. 플로렌스 퓨와 함께 3편에 나올 새로운 캐릭터, 곧 폴의 여동생으로 베네 게세리트의 후계자가 될 안야 테일러 조이도 잠깐 그 자태를 엿보인다. 프랑스 출신의 스타 여배우 레아 세이두도 나오는데 그녀 역시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으로 폴의 정적인 하코넨의 아들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의 아이를 의도적으로 임신한다. 잔혹하기 그지 없는 젊은 폭군 페이드 로타를 위대한 전사이자 프레멘의 구세주이자 마디인 폴이 직접 일대일 결투로 해치운다. 하지만 레아 세이두는 3편에서 페이드 로타의 아들을 내세워 또 다른 복수극을 벌일 것이다. 그런 얘기가 예고되고 있다.

‘듄:파트2’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1만104년의 시대에도 미래를 준비한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모두들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기에 정신이 없다. 문제는 1만104년이나 2024년 지금이나 과연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갈 것이냐이다. 과거는 미래이고 미래는 현재이다. ‘듄:파트2’가 가르쳐 주고 있는 세계관이다. 자 당신은 어떤 리산 알 가입을 원하고 있는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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