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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원경의 돈의 세계

외로움이란 유행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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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예술을 사랑한 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는 고독은 위대한 선물이라 했다. 외로움이 내면세계를 확장시키기에 고독을 사랑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가수 이효리씨가 국민대 졸업식에서 “인생은 독고다이(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니콜라 테슬라나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가는 ‘참 나’와 마주하는 고독이 발명과 성장의 동인이라 했다.

우리가 관계에 초점 맞출 때 이들의 말은 좀 멀어져 보인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고독사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여기는 고독사 가능성은 평균 32.3%이다. ‘나 홀로 산다’는 1인 가구가 ‘나 홀로 간다’고 할 슬픈 운명은 45.05%였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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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연방 의무총감은 2003~2020년 17년간 미국인들이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한 달에 24시간 늘었다 했다. 코로나19 이후 ‘외로움 유행병(loneliness epidemic)’은 더 심각해졌다. 온라인에 의존하며 타인과 대면하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만혼과 비혼이 느는 게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인도 일본인도 20대가 성관계에 부여하는 가치가 과거보다 낮아지는 걸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우려한다. 사회적 연결감 부족은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의료비용 급증의 원인이 된다. 고독이 사무칠 때 직장인은 잦은 결근과 생산성 저하를 일으켜 기업 비용의 증가를 가속화한다.

릴케의 말은 철학자로서 맞다.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자기 정화를 할 수 있다. 2018년 영국이 고독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 이후 ‘함께 외로움에서 탈출’할 것을 제안하는 각국의 정책이 쏟아졌다. 이 상황에서 릴케의 말은 이렇게 수정돼야 한다. ‘고독은 진정한 자아와 연결되지만 심한 전염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이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