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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인구절벽과 우수 유학생 유치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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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

예일대학교 로스쿨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의 책 『제국의 미래』를 보면 역사상 강대국으로 부상한 제국의 특징은 외부 세력에 대한 관용과 포용에 있었다. 당나라 제국의 발흥도 많은 외국인을 유입시켜 포용한 정책에 기인했다고 책에서 설명한다. 수도 장안(長安)에는 당시 지구상 도시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있었고 인종의 다양성도 뛰어났다.

당 태종은 신라인 7만 명을 받아들였고 신라의 귀족과 관리들을 관직에 등용했다. 신라 후기에는 매년 100여 명의 6두품 이하 자제들이 당나라로 건너가 10년 정도의 유학생활을 했다. 840년 한 해에 105명 유학생이 동시에 신라로 귀국했다는 기록까지 있다. 당나라 홍로사(鴻臚寺)에서는 외국 유학생을 위해 숙식과 의복을 제공하는 장학제도를 운용했다. 당나라 과거시험에 906년까지 58명, 이후 925년까지 22명의 신라인이 급제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도 당나라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감찰과 문한을 맡는 도통순관과 관역순관이라는 직책으로 복무하다가 17년 만에 고국 신라로 귀국했다.

제국의 강점은 다양성과 포용력
국가경쟁력 핵심은 인력시스템
해외인력으로 인구절벽 극복해야
우수 유학생 유치 위한 전략 시급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찾아온 이민자들의 천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1933년부터 1950년 사이에 13만 명에 달하는 유럽 지식인들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5년 이후 아시아계 미국 이민자 숫자는 약 2200만 명에 달해 인구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 3억3000만 명 가운데 백인 57.8%, 히스패닉 18.7%, 흑인 12.4%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은 건국한 연도와 국토면적은 비슷하지만 이민을 적극 수용한 미국만 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1776년, 브라질은 1822년, 캐나다는 1867년 건국했다. 국토 면적은 미국 983만㎢, 캐나다 998만㎢, 브라질 851만㎢로 비슷하다. 하지만 인구는 미국이 3억3000만 명인 데 비해 브라질은 2억1000만 명, 캐나다는 3400만 명에 불과하다. 인종 분포도 캐나다는 73%가 유럽계이고, 브라질도 유럽계 백인 47.7%에 백인과 흑인 혼혈 물라토 43.1%로 다양하지 않다.

지금 미국 경제에서 지식노동은 한국, 인도, 중국 등 아시아계 인력에 의존하고 육체노동의 대부분은 히스패닉이 담당하고 있다. 첨단산업의 메카 실리콘 밸리의 인구 비중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36.2%, 컴퓨터 엔지니어의 29.6%가 아시아계이다. 미국 건설현장 노동자의 60%는 히스패닉이 담당한다. 히스패닉 인구가 42.1%를 차지하는 뉴멕시코, 32%가 넘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는 이들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인구절벽을 맞은 우리나라의 미래는 심각하다. 2016년 생산가능인구는 3763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으며,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까지 내려갔고, 총인구도 2020년 5184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2100년에 인구가 2000만 명대가 된다고 한다. 이제 저출생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다각도로 미래 인구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홍콩과기대 김현철 교수의 홍콩 가사도우미 경제학은 흥미롭다. 홍콩이 1974년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이후 대졸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이 평균 25% 상승했다고 한다. 2022년 홍콩에는 약 34만 명, 싱가포르에는 약 27만 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있다. 다음 달부터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시범사업으로 필리핀에서 100명의 가사도우미가 입국하게 된다. 가사도우미 외국인 노동인력 유입이 본격화되면 출생률 변화도 기대해볼 만하다.

외국인 유치에서 단순 노동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수 인재 영입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대학등록금 억제정책 때문에 사립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해온 외국유학생 유치 활동을 넘어서 정부가 체계적으로 우수 유학생 유치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초중고 12년간의 교육비용을 자국에서 부담한 우수 인력들이 대학과 대학원에 유학생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고급인력으로 정착하면 국가적으로 큰 도움을 얻게 된다. 현재 미국에는 약 95만 명, 일본은 약 35만 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있다. 우리는 약 16만 명의 유학생이 있는데 정부는 2027년까지 30만 명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단순한 숫자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유학생을 확보할 전략이 필요하다. 우수 유학생 유치정책으로 일본 정부는 일본학생지원기구(JASSO)를 통해 도쿄 오다이바에 국제연구교류대학촌 시설을 유치하고, 도쿄국제교류관에 외국인 유학생과 연구자를 위한 주거시설을 건립했다.

앞으로 지구촌 노동력은 더욱 활발하게 이동할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은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데 달려있다. 이제 단일 민족의 차원을 넘어 다양성과 다문화를 끌어안아야 한다. 제국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포용의 힘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전 고려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