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문태준의 마음 읽기

리듬과 박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시를 지으려면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는 경험은 나의 시심(詩心)을 일으켜 세우고 시심의 심장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몽골 시인들의 시를 읽었다. 몽골의 자연과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게르, 야생마와 초원, 고비의 모래 언덕, 가족 공동체와 사랑 등을 노래한 시편이었다. 그들은 자연을 “어머니 자연”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감각과 깊은 사유에서 솟은 시편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말과 사막에 관한 표현은 모방할 수 없고, 지금껏 한 번도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는 처음의 것이었다.

어머니 자연을 읊는 몽골 시편들
생활의 호흡과 생명의 밝은 광채
새봄에 틔울 마음의 맹아 생각해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가령 이스 돌람은 시 ‘경주마의 눈’에서 “수많은 경주마 앞에서/ 뽀오얀 먼지를 일으키며/ 선두로 달려오고 있는 경주마의 눈을 보라./ 광막한 지평선에/ 어둠이 서서히 열리고/ 먼 산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새벽의 금성이 그렇게 빛난다.”라고 썼다. 질주하고 있는 말의 눈빛과 새벽녘 금성이 내뿜는 광채를 연결시키면서 말이라는 하나의 생명 존재를 우주적 존재로 인식하는 큰 생각을 보여주었다. 몽골의 시인들이 자연을 통해 노래한 것은 인색함이라는 자물쇠가 없는 마음, 조금 더 자애로운 마음, 평온하고 순결하고 넓은 마음, 용기와 인내 등이었다.

시편들 가운데 더 많은 시간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체 사롤보잉이 쓴 시구였다. 시 ‘만남’에서 거듭거듭 등장하는 시구였는데, 그것은 “생의 기운을 돌린/ 태양의 리듬/ 달의 박동이 있는/ 시간의 순환은/ 끝없는 세월의 연속”이라고 진술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왜 태양으로부터 리듬을 주목했고, 또 달로부터는 박동을 주목했을지 궁금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낮이라는 시간 동안에 반복되는 노동, 그 생활의 호흡을 ‘태양의 리듬’이라고 표현했고, 밤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과 그 음성을 박동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생활의 되풀이되는 호흡과 생명의 밝은 빛이 생의 기운이라니. 아무튼 이 시구를 접한 이후로 때때로, 아니 그보다 훨씬 잦게, 마치 화두(話頭)처럼 ‘태양의 리듬’ 과 ‘달의 박동’이라는 두 개의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이 두 개의 말은 그리하여 요즘 내 사유의 첫머리요, 디딤돌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도 시간의 순환은 이어지고 있다. 겨울은 뒷등을 보이며 사라져가고, 저만치서 봄이 옷의 앞자락을 풀어헤치며 다가오고 있다. 봄을 맞이하는 때에 이른 것이다. 물론 한라산에는 잔설이 남아 있고, 두어 차례 추위가 앞으로도 몰려오겠지만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라봉 나무에는 이제 새가 먹을 열매만 남겨져 있다. 가끔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살펴보니 새가 달콤한 맛을 즐기고 다녀갔는지 과육이 움푹 패여 있다. 식구들이 먹을 한라봉 열매는 집 뒤꼍에 큰 항아리를 묻어, 거기에 저장해두었다.

그저께는 한라봉 나무를 전정했다. 나보다 훨씬 농사에 밝은 이웃집 사람이 전정을 막 끝냈기에, 전정의 시기를 재던 나는 서둘러 가지를 잘라냈다. 이웃집의 농사를 따라서 하긴 했지만, 이웃집 사람만큼 대범하진 못해서 나무에 햇살이 사방에서 골고루 들 수 있을 정도로만 곁가지를 쳤다. 고향집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한 해의 일을 끝낸 나무에는 비료를 넉넉히 줘야 한다고 하셔서 또 그 말씀에 따라 비 오는 날에 모자라지 않게 비료를 뿌려주었다.

서툴지만 삽목(揷木)도 했다. 삽목은 잘라낸 가지나 줄기를 흙에 꽂아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인데 개체를 늘리는 일인 셈이다. 삽목법도 이웃집 사람에게 배웠다. 내 집과 이웃집에는 같은 종류의 화초가 더러 있다. 이웃집 화단에 고운 꽃이 피면서 근사하게 자라는 화초가 있으면 그 화초의 이름을 물어 그때마다 심었던 탓에 이제 이웃집 화단과 내 집 화단은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 이웃집 사람이 어느 날 내 집 화단을 보게 된다면 빙긋이 웃게 되겠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웃집 사람이 알려준 대로 잘라낸 줄기마다 두 개의 순이 남도록 해서 부드러운 흙 속에 묻었고, 물속에 담가두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삽목한 가지로부터 뿌리가 나오고 두 개의 눈, 즉 두 개의 맹아(萌芽)에 의지해 화초는 자라날 것이다.

삽목을 하다 보니 잘라낸 가지에 남겨놓은 두 개의 눈이 화초의 생장에 있어 어떤 시초이자 단초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맞이할 새봄에는 어떤 마음에 근거해 살아가야 할까를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몽골 시인들이 자연으로부터 얻은 자애롭고 평온하고 순결하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도 좋을 것이요, ‘태양의 리듬’과 ‘달의 박동’이라는 두 개의 말을 내면의 갈피에 넣고 살아도 좋을 테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