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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AI 바둑 실력도 결국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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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검은 돌 흰 돌

검은 돌 흰 돌

알파고(alphago) 이후 수많은 바둑 AI가 태어났다. 이들 바둑 AI의 생태계는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까.

‘바둑사랑’이란 카페에 들어가 ‘세븐틴’이란 아이디를 쓰는 인물을 만나보기로 했다. 본명은 김원식. IT업계에서 일하는 그는 바둑 실력은 초보지만, 프로기사나 프로지망생, 아마추어 강자들에겐 아주 중요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는 자비로 설치프로그램을 만들어 수많은 바둑인에게 바둑 AI를 무료로 배포하고 잘 사용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지시에 따라 세팅을 하면 화면엔 오픈 소스로 되어있는 AI 20여개가 주르륵 나타난다. 릴라제로, 미니고, 엘프고, 카타고 …

실력은 제각각이지만, 이들과 대국도 하고 복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데이비드 우가 만든 카타고(KataGo)는 실력이 발군이고 인기도 최고인데 15블럭~60블럭까지 버전이 다양하다. 세븐틴에게 물어본다.

카타고가 AI 동네를 평정했다고 볼 수 있나.
“오픈 소스 중에서는 최강이다. 중국의 절예(絶銳)나 골락시는 더 강하다고 하는데 유료이고 비공개라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

(사실 절예는 초창기 세계 AI 대회서 몇 번 우승했고 그 후 모습을 감췄다. 절예가 불참한 대회에서 골락시가 우승한 전력이 있다. 텐센트가 개발한 절예는 중국 국가대표팀과 선별된 인사들에게만 공개되고 있고 ‘커제용’이 따로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신진서가 세계최강자인 현실을 생각할 때 절예의 성능이나 효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미묘한 문제다.)

AI의 실력은 꾸준히 늘고 있나.
“카타고를 보면 실력은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지만,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 사실 AI의 수준 향상은 ‘돈’과 밀접하다. 큰 자본이 빠져나간 지금은 비싼 컴퓨터를 보유한 일반 사용자들의 도움도 받고 있다. 억대의 그래픽 카드를 가진 부자들이 컴퓨터끼리 대국시킨 기보를 보내 기여를 하는 식이다. 일종의 공동 육아라고나 할까.”

(알파고는 구글이 만들었다. 과거 체스도 IBM의 자본이 들어오며 판도가 급변했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 텐센트가 뒤에 있는 절예가 다른 AI보다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건 분명하다. 국산 바둑 AI가 힘을 못 쓰는 이유도 돈과 관련이 깊다.)

카타고가 축을 틀리는 문제는 해결됐나.
“최신 버전에선 축 버그가 사라졌다.”

(아무 것도 입력시키지 않고 컴퓨터끼리 수천만판을 대국하며 스스로 깨우친 ‘알파고 제로’가 인간 기보를 입력시킨 알파고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나 18급이면 아는 축의 원리를 스스로 깨우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실 AI 입장에서는 축으로 몰아가는 수들이 꽤 엉뚱해 보였을 것 같다.)

현재 카타고의 실력은?
“초일류 기사를 2점 접는다. 실력이 좀 떨어지는 프로는 3점도 쉽지 않지만, 자존심 문제가 있어 공개하기는 좀 그렇다.”
AI는 아무리 빨리 둬도 실수가 없나.
“바둑은 결국 누가 실수를 덜 하느냐의 게임인데 인간은 결국 실수하고 AI는 시간이 없어도 실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 인간과의 대국에서 AI는 대개 1~5초의 초속기로 두는데 그 시간을 늘리면 AI의 실력이 더 강해진다.”
미국 AI 연구소 직원인 아마추어가 카타고에게 15전14승을 거둬 큰 화제였다.
“AI도 약점이 있다는 걸 증명한 사건으로 의미가 있다. 다른 AI를 시켜 약점을 찾아낸 것인데 바둑 자체로는 아무 기여도 할 수 없는 해프닝이었지만, AI가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하는 효과는 있었다. 지금쯤은 아마 해결됐을 것이다.”
바둑이 세계화되려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세계 챔프가 나오는 것이 지름길이다. AI가 그런 고수를 키워낼 수 있을까.
“AI의 블루 스폿은 바둑판 먼 곳에서 돌 하나만 살짝 움직여도 달라진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런 바둑의 원리를 깨닫는 천재가 등장한다면 일약 초일류 고수가 될 것이다. 확률은 낮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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