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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장기성장률 높여 청년 소득 늘려야 저출산 문제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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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세계 최저 수준 저출생 극복하려면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자녀를 낳고 열심히 키우는 것이다. 가난했지만 매년 8% 이상 고도성장하던 1970~80년대 부모들은 이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자녀를 키우는 큰 행복을 포기하고 있다. 얼마 전 식사를 같이했던 30대 청년도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갖는 게 오랜 꿈이었지만 그 소망을 할 수 없이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합계출산율로 나타나고 있다.

맬서스, ‘인구는 경제력이 좌우’

많은 젊은이가 결혼하고 출산해 단란한 가정 갖는 꿈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산과 인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이다. 이런 까닭에 출산과 인구 문제는 역사상 최초의 경제학 교수가 된 토마스 맬서스의 평생 연구 주제이기도 했다. 맬서스가 1798년 출간한 『인구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한 나라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수는 그 나라의 경제력, 즉 소득 창출력에 맞춰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인구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준금리, 2% 이하 떨어지자
서울 아파트값 매년 14% 올라

집값 못 따라가는 소득·저축
청년층 결혼과 출산 포기해

출산 장려금 등 효과 제한적
300조 예산 투입도 무용지물

맬서스의 이 놀라운 통찰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가난의 덫을 벗어나 경제력이 증가하는 나라는 인구가 따라서 증가하지만,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나라는 인구 증가가 둔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출산이 줄고 인구가 감소한다면 그 원인은 경제력의 하락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

우리나라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도 결국 필자가 2016년 제시한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른 경제성장률 추락 때문이다. 30년 넘게 8% 이상을 구가했던 장기성장률은 1990년대 초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떨어져 0%대로 근접해 가고 있다. 이러한 성장률의 추락이 결국은 출산율 저하를 불러온 것이다.

저출산 근본 원인은 성장률 추락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

제로 성장에 근접하는 상황에서 왜 우리 젊은이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지는 간단한 계산을 해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대졸 청년을 예로 들면 이들은 평균적으로 대학을 5~6년 다닌다. 졸업 후 20대 중후반에 직장에 취직한 뒤, 5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직한다. 결국 직장에 다니는 기간은 길어야 25년 정도다.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현재 4200만원 수준인데, 향후 경제성장률이 0에 가까운 상황이라 더 증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평생 직장에 다니며 버는 총소득은 10억원 수준이다. 개인 순저축률이 10%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결국 직장에서 평생 저축할 수 있는 돈은 1인당 1억원에 불과하다. 부부가 함께해도 2억원 정도다.

한편 이들의 소박한 꿈은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사서 자녀와 함께 보금자리를 꾸미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11억원을 돌파했다. 교육비는 차치하더라도, 부부가 평생 저축한 돈 2억원으로 11억 원짜리 집을 사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전셋값도 6억원은 하는데, 2억원으로는 전세도 불가능하다. 대출을 받아 봐야 어차피 빚이다. 부유한 부모의 지원을 받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다면, 꿈을 이룰 현실적 방법이 없다. 이런 행운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많은 젊은이는 아예 결혼과 출산, 행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출산율 저하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5% 성장, 청년 소득 30년 뒤 4배로

따라서 저출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젊은이의 소득을 빠르게 증가시켜 주는 것이 최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성장률을 높여야만 한다. 성장률을 높이려면 우리 자본주의 체제를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이 성장을 이끄는 체제로 빨리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저금리 정책과 아파트값 증가율

저금리 정책과 아파트값 증가율

특히 아이디어 재산권 보장 제도와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 시스템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에 수많은 크고 작은 스티브 잡스가 나오고 이들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산업화하면서 장기성장률이 높은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 5%의 장기성장률만 달성해도 젊은이의 소득이 30년 뒤 4배 이상으로 증가한다. 경제 성장이 집값과 소득 갭을 줄여 저출산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집값 안정화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 집값 안정화를 위해서는 특히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이 너무나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집값 급등을 부추긴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도한 저금리였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은 기준금리를 2% 혹은 그 이하로 낮추면 서울시 아파트 가격은 매년 평균 14%씩 올랐다.

특히 2% 이하의 저금리가 2014년 이후 7~8년간 유지되면서 서울시 아파트 가격은 무려 두 배반, 예컨대 4억원짜리가 10억원까지 올랐다. 저금리 정책은 아주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집값 급등의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너무 과도하지 않은지에 대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의 면밀한 분석과 이에 입각한 정치한 금리 정책이 요구된다.

젊은 세대 관점의 대책 필요

그동안 시행됐던 다양한 형태의 출산 장려금 정책이 일부 젊은이에게만 효과가 있을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출산 혹은 자녀 양육에 대한 보조금을 2000만~3000만원 준다 해도 집값 10억원과 평생 저축 2억원의 갭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젊은이가 이 보조금 때문에 마음을 바꿔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유한 부모 도움으로 부족한 집값의 상당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일부 젊은이에게만 보조금이 효과를 미칠 수 있다. 그동안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 예산으로 300조원 이상을 썼는데도 저출산을 막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정부와 여야 정치권도 저출산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 등 고심하고 있다. 각계 지도자도 실천적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다(중앙일보 ‘정운찬 칼럼’ 2024년 1월 10일자). 여야와 정부, 국민이 한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필요하다면 공동의 기구를 만들어 공동의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기성세대의 관점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행복의 관점에서 최상의 정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결혼과 출산의 양극화 막으려면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은 식량 생산에 비해 인구가 훨씬 빠르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예측으로도 유명하다. 그 결과 국민은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먹고 사는 가난한 상태에 이를 것이라 예측했다. 이 암울한 예측으로 인해 경제학은 ‘우울한 과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맬서스의 예언은 다행히도 빗나갔다. 예언과 달리 1800년대 초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이후 200년간 세계 경제는 기술 진보와 인적자본 축적을 통해 지속적 성장을 경험해 왔고 인구 증가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인구 증가 속도에 대한 맬서스의 예언이 빗나간 이유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가 명쾌히 밝혔다. 베커에 따르면 부모는 자녀 양육으로부터 얻는 행복과 비용을 비교해서 몇 명의 자녀를 낳을지를 결정한다. 이때 부모는 자녀의 수보다는 질로부터 더 큰 행복을 얻기에, 소득이 증가해도 자녀 수를 늘리기보다는 교육 투자 등 자녀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그 결과 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출산이 늘어나지 않게 된다. 이에 더해서 피임에 관한 지식 차이 등으로 인해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 수가 많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소득이 낮을수록 오히려 자녀 수가 적어지는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 집값과 저축 갭을 해소하기 어려운 청년이 아예 결혼을 포기해 자녀 수가 0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장률 추락에 따른 저출생 현상은 향후 결혼과 출산의 양극화 현상까지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국가적 관심을 요한다. 따라서 출산 보조금이나 이민 등의 저출산 대책을 고민한다면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지 않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수반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인구-소득의 갭을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인구를 줄이는 방법과 소득을 늘리는 방법이다. 국가가 국민의 소득을 못 늘려주면,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 스스로 인구를 일정 수준까지 줄일 것이다. 이 방법은 양극화와 함께 많은 젊은이의 행복을 희생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반면 나라가 장기성장률을 높여 소득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면 인구 감소 없이도 인구와 소득의 갭이 없어진다. 두 방법 중 양극화 없이 젊은 세대의 행복을 보장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해야 함은 명확하다. 이것이 우리가 그 어떤 것에 앞서 ‘장기성장률 회복’에 나라의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