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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북한 우주인이 국제우주정거장에 오르는 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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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2025년 3월 7일 08시 45분,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오렌지색 불기둥을 뿜으며 소유스2 로켓은 땅을 차고 올랐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체류 임무를 교대하는 73번째 원정팀이 탑승했다. 러시아 사람 두 명에, 한 명이 더 탔는데, 국적과 이름은 극비에 부쳤다. 세 시간이 지난 11시 50분경, 러시아 연방우주국 로스코스모스는 소유스 MS-27이 ISS와 도킹에 성공했다고 짧게 발표했다. 다음 날 저녁, 채널1 뉴스 화면에는 동양 여성 한 명이 러시아 우주인 두 명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우주과학기술국 조선향입니다. 저는 로씨야의 세르게이 리지코프, 페스코프 키릴 동지들과 로씨야 자르야 모듈에서 앞으로 2주 동안 과학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할 계획입니다.”

북 무기 주고, 러 우주기술 받나
‘정상국가’ 위해 우주 협력 속도
북 ‘우주 날개’ 달면 외교 참사
각 부처 우주외교 역할 고민해야

북ㆍ러 우주협력 빠르게 진행될 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노동신문=뉴스1]

2013년, 북한의 국가우주개발국(NADA)은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안보리 결의 2087호)에 올랐다. 최근 기관 간판을 바꾼 이유다. 그녀는 고도 400㎞ 상공에서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천명했다. 세계 여성의 날 방송을 내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공군 파일럿이며 계급은 상좌(중령)로 밝혀졌다.

조선향은 미생물을 이용해 니켈을 원석에서 분리하는 우주 채굴을 포함, 12가지 과학실험을 선보였다. 언제, 다 준비했을까. 묘향산 칠색 송어와 남포 조개, 청진 털게, 칠보산 송이버섯, 나진 옥수수로 만든 우주식과, 찹쌀을 엿기름에 삭힌 ‘노치’라는 떡을 먹는 장면도 생중계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조선 해외농업연구소와 로씨야 의생물학연구소가 손을 맞잡고 개발했다”고 선전했다. 한국 신문엔 북·러가 지구온난화 감시위성을 쏠 거라는 추측성 기사가 1면을 도배하는가 하면, 국제우주연맹(IAF)에 북한이 가입 원서를 냈다는 소식도 실렸다.  북한이 UN 평화적 우주 이용 위원회(COPUOS·코푸스)의 103번째 회원국이 될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조선중앙TV 뉴스의 딥페이크 동영상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10년 안에 조선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이건, 필자가 꾸민 허구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해 9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 회담은 상상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키웠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북한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방공망을 무력화하는 가능성을 점쳤고, 지난 2월 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파괴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 경제를 도울 거라는 뉴스에, 무기와 우주기술의 거래를 의미하는 신호가 잡혔다. 보란 듯 푸틴 대통령의 방북 계획이 공개된 상황이다.

북한이 가입신청을 한 코푸스는 어떤 곳일까. UN 빈 사무국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외에도 우주업무사무국(OOSA)이 있다. UN에서 유일하게 우주에 관한 일을 총괄하며 코푸스를 주관한다. 코푸스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며, 일어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다룬다. 한국은 외교부를 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천문연구원·항공우주연구원·전파연구원·원자력연구원에서 대표단을 보낸다. 외교부에선 빈의 국제기구대표부와 군축·비확산, 에너지·과학을 담당하는 2개 부서가 대표석에 앉는다. 천문연구원은 근지구천체, 우주잔해물, 과학과 사회를 위한 별밤 보존을 포함해 3개 안건, 4개 분야에 4명을 파견한다. 올해 1월 말, 2월 초에 열린 과학기술소위원회에는 정부 예산삭감으로 2명만 갔다. 필자는 전문가 회의에 비대면 참석했다.

북, 평화적 우주활동 인정 못 받아

한국은 코푸스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평화적 우주 활동을 인정받지 못해 가입이 부결됐다. 필자는 국면전환을 위해 북한이 그럴싸한 일을 벌이는 장면을 상상했다. 정상 국가로 인정받아 우주개발에 속도를 내고 싶은 저들에게 코푸스는 중요한 관문이다. 중국·러시아는 물론 북한 편이다. 중국은 자국 영토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베네수엘라 등지에 지상국을 세워 운영한다. 달 탐사선 창어와 화성 탐사선 톈원의 통신을 지원하고 있지만, 속셈은 따로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서방 우주 자산을 정탐해 기밀을 빼내는 데 쓸 수 있다. 배후의 인민해방군 전략지원군의 존재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중국은 이집트에까지 손을 뻗쳤다. 덕분에 위성 조립·통합·시험 센터를 연 이집트는 그런 능력을 갖춘 아프리카 최초의 국가가 됐다. 최근 합작 위성도 쐈다. 이집트 정부는 양국 협력이 전략적이며 생산적이라고 평가했다. 중·러의 국제 달연구기지(ILRS)에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가 손을 내민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UAE는 미국과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한 나라다.

우주 활동을 축으로 실제로 발생했거나 발생할 법한 외교현안의 단면들을 살펴봤다. 핵심은 실타래처럼 얽힌 정치·경제·문화·안보 전략과 국익이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각각 백악관과 국무원이 머리요, 국무부와 외교부, 항공우주국(NASA)과 중국국가항천국(CNSA)이 손발 역할을 한다. 백악관은 최근 미·일 우주안보협력의 세부사항을 보고서에 담았다. 대통령제 국가는 대통령실에서 우주 외교를 지휘하는 게 맞지 않나. 동시에 국가우주위원회와 우주항공청·외교부가 어떻게 협력할지 고심할 때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빌미로 북한이 날개를 다는 외교 참사는, 상상으로 끝내야 한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