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영웅들을 건축으로 재현한 판차 라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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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힌두교는 교조도 경전도 통일된 교리도 없다. 그러나 힌두교도라면 누구나 수백 번 듣고 보아서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 왕국의 사촌 간 왕위 쟁탈전을 줄거리로 십수 세기 동안 구전된 대서사시다. 수많은 영웅과 신들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인간사의 삼라만상을 그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비견된다. 또한 근본적인 힌두사상이 곳곳에 설파되어 경전의 지위까지 오른 고전이다.

정의의 판다바 형제들이 주인공으로 왕위계승자인 유디슈티라, 천하장사 브히마, 불세출의 명궁 아르주나, 쌍둥이 나쿨라와 사하데바, 그리고 그들 공동의 아내인 드라우파디 등 6인이다. 타밀나두주 마하발리푸람의 ‘판차 라타스’는 이들에게 헌정된 기념 단지다. 7세기 후반 팔라바 왕조에서 5개 동의 기념당 건축을 시작했다. ‘5개의 마차’라는 뜻은 건물들이 고대의 마차 형태를 모사해서 붙은 이름이다. 곁들여 힌두교의 신성한 동물인 코끼리·사자·황소를 사실적으로 조각했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기념당들은 정방형·장방형·말굽형 등 평면 형식이 다양하고, 피라미드형·사모형·아치형 등 지붕 형태도 각각이다. 당대의 여러 목조 건물들을 석조로 번안해 창조한 형태로 이후 건설된 힌두사원 신전들의 원형이 되었다. 유디슈티라에게 헌정된 다르마라자(법왕) 라타가 가장 크고 화려하며 브히마 라타는 시골 마차의 모습을 닮았다. 쌍둥이 형제는 말굽형 라타에 함께 헌정되었다. 왕비 드라우파디는 약간 모자란 남편들을 최후의 승리로 이끈 원탑 히로인으로 그녀에게 바친 라타는 소박하지만 가장 정교하며 내부에 두르가 여신상을 봉안한 유일한 신전 형식이다.

마하바라타의 살아있는 설법장인 이곳은 하나의 큰 바위를 깎고 쪼아내 만든 작품들이다. 원래 바위의 모양에 맞추어 기념물들의 위치와 형태가 결정되었다. 세우고 쌓는 건축과 달리 상부부터 조각해 내려왔기에 하부는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경전을 건축으로 번역한 상상력에 감탄하고 정교한 석조기술에 감동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