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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선데이] 두 법무부 이야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7호 29면

정재민 변호사

정재민 변호사

혁명기 파리와 런던을 대비시킨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며,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천국을 향해 가고자 했으나 우리 모두는 결국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문장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속 문장이고, 이 책은 당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소설이라 한다.

정권 교체로 편가르기 극심해도
어느 정부에나 장단점 있는 법
이어달리기 주자처럼 역할해야
우리 사회 난제 해결 할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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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변호사이지만 나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공무원이었다. 23년 공직 생활 중 절반은 판사로서 일했고, 또 다른 절반은 방위사업청, 외교부 같은 중앙행정부처에서 일했다. 마지막 직장은 법무부였다. 법무부 안팎에 각종 법적 자문을 하는 법무심의관과 전국의 국가배상·행정소송을 총괄하는 송무심의관으로 도합 3년 4개월 일했다. 그중 절반이 지난 정부의 ‘탈(脫)검찰화’ 법무부 때였고, 나머지 절반이 이번 정부의 ‘재(再)검찰화’ 법무부 때였다. 그때마다 구성원이 대폭 바뀌었다. 그래서 ‘두 법무부’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최악의 시절, 어리석음의 시대, 의심의 세기, 어둠의 계절”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원래 정치색이 있거나 어느 정부에서 불이익을 당한 이들이면 더욱 그랬다. 서두의 인용문에 이어지는 문장도 “언론과 정계의 목소리 큰 거물들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시대가 극단적으로만 보여지길 원했다”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진영 편가르기가 심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두 정권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통합’을 말하면 위선이나 나이브함으로 비칠 지경이다.

“너는 어느 편이냐?” 법무부에서 일하는 동안 많이들 물었다. 추미애 장관에게 임명장을 받고 박범계 장관과 한동훈 장관의 임기 내내 심의관으로 보좌했으니 나도 누구 편인지 모르겠다. 현 정부에 들어서 법무부는 온통 검사로 다시 채워졌는데, 그 속에서 유일한 비(非)검찰 출신으로 일하는 게 편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판사 출신이 법무부에 여러 명 왔던 문재인 정부의 탈검찰화 시절이 친정처럼 편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본질적이라기 보다 부수적인 것이다.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의 가장 유명한 문장은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이다. 전문 직업인은 이것저것 따질 여가도 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이다.  내게는 정치적 좌우나 검찰·비검찰 출신을 떠나 일이 잘 이뤄지도록 지원을 많이 해주는 상사,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직원이 최고였다. 그런 분들이 어느 한쪽의 법무부에만 몰려있지는 않았다.

내 업무로만 국한해도 두 법무부가 제각기 장점이 있었다. 지난 정권의 법무부는 일사분란함 대신 보다 개방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1인 가구’ 법안이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추가한 민법 개정안 등 미래를 향한 법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반면, 현 정부의 법무부에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현실 문제를 실무적으로 해결하는 쪽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인터넷 상의 살인예고글 게시자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고, 병역의무 남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킨 것 등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한쪽이 좋고 어느 한쪽이 최악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도시 이야기』의 메시지도 런던이 최고고 파리가 최악이라는 게 아니라, 파리와 런던 안에 최고와 최악이 공존하고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정쟁의 주무대로 비친 측면이 있지만, 내 경우 두 정권에 걸쳐 같은 일을 이어서 했던 경험이 적지 않다. 가령 출생신고 누락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신생아 출생을 통보하도록 한 법이나 미성년자 빚대물림 방지법은 지난 정부의 법무부 때 법안을 발의해서 이번 정부의 법무부 때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하나같이 뜻깊고 보람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인 양극화, 인구절벽, 경제위기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더더욱 긴 이어달리기일 것이다. 각자 바통을 쥔 동안 “진영을 따지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하러 간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다음 주자에게 무심하게 물려주는 것, 그것이 최고의 프로페셔널리즘이자 실현 가능한 최선의 사회통합이라 생각한다. 또한 공직자로서 한시도 잃지 말아야 할 국민에 대한 도리 아니겠는가.

정재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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