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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네 대의 첼로로 만나는 겨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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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추운 겨울에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 음악은 유구한 역사에 걸쳐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로 자리 잡았고, 계절의 변화는 음악이 표현해 온 주요 대상 중 하나였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을 그린 음악으로는 비발디의 ‘사계’가 가장 잘 알려졌지만, 이후 19세기 차이콥스키의 ‘사계’, 20세기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도 있다. 21세기에는 비발디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막스 리히터의 ‘리콤포즈드 사계’가 새롭게 조명받기도 하였다. 이 음악들은 겨울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여러 작곡가가 그려낸 ‘사계’
자연을 모방하는 음악의 묘미
귀를 통해 얻는 마음의 에너지

지난달 열린 ‘송영훈의 4 첼리스트 부에노스아이레스 겨울’ 공연 모습. [사진 스톰프뮤직]

지난달 열린 ‘송영훈의 4 첼리스트 부에노스아이레스 겨울’ 공연 모습. [사진 스톰프뮤직]

지난 1월 27일 ‘송영훈의 4 첼리스트 부에노스아이레스 겨울’(예술의 전당 IBK홀) 공연에서는 낮은 음역의 현악기인 첼로 4대가 그리는 겨울을 만날 수 있었다. 검은색 수트를 입고 각각 첼로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 송영훈·조형준·이경준·채훈선은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사계’ 중 ‘겨울’을 비롯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바리에르(J. Barriere)의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엔리오 모리꼬네(미션), 존 윌리암스(쉰들러 리스트), 루이스 바칼로프(일 포스티노)의 영화음악을 연주했다. 이들은 대부분 원곡을 첼로 편성으로 편곡한 작품이었는데, 원곡의 묘미뿐 아니라 첼로 고유의 음색을 매력적으로 들려주었다.

쨍쨍한 바이올린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비발디의 ‘사계, 조화와 영감 op. 8’ 중 ‘겨울’을 네 대의 첼로 사운드로 듣는 것은 색달랐다. 1악장은 리드미컬했지만 건조하게 시작하였다. 약간의 불협화적 화음을 포함한 비루투오조적 선율과 빠른 리듬의 변화를 부각해 익숙한 비발디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4대의 첼로는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절제하면서 바로크적 대비를 보여주었다. 중간에 미니멀리즘적으로 반복구가 나오는 부분은 막스 리히터의 ‘리콤포즈드 사계’를 연상시켰다.

2악장은 ‘밖에 비가 휘몰아칠 때 난롯가에서 조용하고 만족한 시간 보내기’라는 소네트에 붙은 곡으로, 고요하고 편안함으로 ‘하느님의 손안에서 쉬는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4대의 첼로는 분위기를 바꾸어, 난롯가에서의 아늑함보다는 가벼운 경쾌함을 부각했다. 주선율이 담백하게 울리면서, 첼리스트들은 선율로 대화를 나누었다. 느림 템포로 시작한 3악장에서 송영훈은 주선율을 담당하고 조형준, 이경준, 채훈선은 오케스트라 파트를 맡았다. 즉흥성이 느껴지는 주선율이 다소 흔들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단계적으로 음향이 겹치면서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활을 가볍게 터치하는 기법과 서정적 선율선의 대비가 드러나면서, 화려하게 곡을 마무리했다.

밝은 분위기의 비발디적 겨울과는 다르게,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의 ‘겨울’은 쓸쓸하면서도 다소 노곤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그렸다. 주로 바이올린의 비루토오소적 테크닉이 부각되며 피아노가 함께 하는 이 곡을 네 대의 첼로로 재연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첼로는 고음역과 저음역을 빠르게 오가며, 정교한 리듬감으로 주선율을 너끈하게 소화했다. 이경준의 독주 사운드는 풍성했고, 그의 피치카토를 송영훈이 받아서 다시 고음역으로 주선율을 끌어올리고, 이후 조형준이 이끈 3대의 첼로와 격렬하게 합쳐지는 부분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냉철함을 잃지 않은 채훈선의 독주 선율이 다시 송영훈의 선율과 대화를 나누었고, 4대의 첼로는 탱고의 리듬을 곁들여 풍성한 화음을 연출했다. 이 곡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선율이 의외로 첼로와 잘 어울려 놀랐다.

이렇게 음악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계절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각 계절의 내면에 숨어있는 느낌을 은유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새로운 시각에서 자연을 다시 보게 한다고나 할까? 예술의 자연 모방에 관심을 가졌던 18세기 철학자 뒤보스(J. B. Dubos)는 『시와 그림에 관한 비판적 성찰』(1719)에서 음악은 “자연이 스스로 창조한 열정의 산물로서, 자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우리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굉장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귀가 좋아하는 것은 마음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지루함에서 탈출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고 보았던 뒤보스에게 음악은 마음의 고유한 에너지를 가진 예술로 비추어진 것이다. 비발디와 피아졸라가 각각 자신의 시각에서 구현한 겨울이 4대의 첼로를 통해서 우리의  귀와 마음으로 전해지면서 나만의 겨울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은 일상에 숨겨진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듣게 하는 예술이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