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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관포지교(管鮑之交)와 포숙아(鮑叔牙)

중앙일보

입력

관포지교. 바이두

관포지교. 바이두

‘꽃, 물, 해, 땅, 달, 쇠, 돌, 뫼, 벌, 새, 그리고 벗’이 있다. 이렇게 단 한 글자로만으로도 크고 온전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우리 순우리말 명사들을 떠올려본다. ‘우정의 무대’이기도 한 이 지구촌의 주인공, ‘벗’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단 안심이 된다. 이 심플한 한 음절의 몇몇 어휘들이 어쩌면 우리 문화의 원형(原型)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탐색 여정의 튼실한 사다리나 든든한 열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자성어는 ‘관포지교(管鮑之交)’다. 검색창에서 ‘우정’ 또는 ‘벗’과 관련해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사자성어 가운데 하나인 이 ‘관포지교’를 구성하는 네 글자는 의미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앞의 두 글자를 살펴보자. ‘관’은 훗날 중국에서 관자(管子)로까지 추앙되는 관중(管仲) 관이오(管夷吾)의 성씨고, ‘포’는 포숙아(鮑叔牙)의 성씨다. 다음으로, ‘지교’는 ‘~의 사귐’이다. 따라서 이 둘의 결합인 ‘관포지교’는 ‘관이오와 포숙아의 사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열전(列傳)’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관중의 우정 고백 부분이 나온다. 각종 사료와 목민(牧民), 경중(輕重) 등 관중의 저술들을 검토한 후 사마천은 이 한 편 우정의 드라마를 기록했다. 이로써 포숙아와의 수십 년 사귐에 있어 관중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고, 또 포숙아가 얼마나 관중 자신과의 우정에 사려 깊고 관대했는가가 비교적 낱낱이 후세에 알려졌다.

핵심 얼개는 이러하다. 오늘날 중국 최초의 경제학자로까지 평가받는 관중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노년기에 당시로선 상당히 예외적인 우정에 관한 고백을 하나 한다. 관중의 이 고백은 진솔하기가 짝이 없다. 읽는 순간 그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어하는 자신의 약점과 ‘흑역사’가 있는 법이다. 그것을 그저 담담히 고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중이 얼마나 도량이 큰 인물인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지만(生我者父母),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님이다(知我者鮑子也).” 관중 고백의 엔딩 부분이다. 관중은 이 엄숙한 마무리 심경 고백으로 당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했던 포숙아와의 긴 사귐의 개인사를 요약했다. 이어 사마천은 포숙아의 사람을 알아보는 대단한 안목에 대해서도 높이 평한다. 세상은 이 우정에 ‘관포지교’라는 미명(美名)을 붙여 후세에 전했다.

이 우정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 넷을 꼽아볼 수 있다. 첫째, 성공한 최고 권력층 사례지만 때가 덜 묻었기 때문이다. 흔히 권력층 내부의 우정 후일담은 과장이나 미화의 유혹에 약하다. 둘째, 진솔한 우정의 ‘비하인드 스토리’ 고백이다. 대개 ‘회고록’은 기억 뒤틀기나 자기 변명이 끼어들기 쉬운 영역인데 여기서는 오히려 거꾸로다. 셋째, 빈부와 귀천을 초월한 우정이다. 젊은 관이오는 아주 가난했고 포숙아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거 신분 사회에서 이런 사랑이나 우정은 당연히 금기시되었고 요즘에도 주목받는다. 넷째, 생사가 걸린 가혹한 시험을 통과한 우정이다. 누가 봐도 죽을 ‘운명의 덫’에 빠진 관중을 포숙아는 제나라 환공(桓公)에게 적극 추천해 오히려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돕는다. 환공은 재상 관중의 탁월함에 기대어 춘추시대 첫 패자(覇者)의 지위에 올랐다.

우리 지구촌에 우정에 대한 명언(名言)들은 참 많다. “사업하다 생긴 우정이 우정으로 하는 사업보다 낫다.” 미국의 사업가 록펠러는 이렇게 우정의 빈틈과 위태로움을 간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동질의 우정일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칸트조차도 뭔가 답을 찾아보려 ‘사랑’과 ‘존경’의 분석을 시도하기도 했고, ‘도덕적 우애(moralische Freundschaft)’라는 말까지 고안했다. 대략 그는 우애를 서로에게 거리를 두면서 존경하려는 감정으로 이해하며 특히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는 소망한다. 지구촌 곳곳이 선거철인 요즘 ‘뺄셈의 정치’에 ‘뺄셈의 우정’까지 가미된 최악의 사례들이 많이 출현하지 않길 말이다.

글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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