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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묵음 처리된 창문을 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대설주의보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영동지방의 폭설예보다. 설악산 인근에 내리는 눈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눈을 치우는 속도가 내리는 속도에 따라 잡히면 큰일이다. 눈이 종아리를 웃돌 정도만 되어도 여닫이문은 그 어떤 힘으로도 열리질 않는다. 다행히 한옥은 미닫이문이 많아 집 탈출은 가능하지만, 문제는 대문이다. 대문까지 10m 남짓한 길을 내는데도 몇 시간이 걸리고, 대문이 열리려면 그 반경을 다 치워야 한다. 그것도 얼기 전에. 그렇지 않으면 세상 부드러워 보이는 눈이 곡괭이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차갑고 쌀쌀맞은 얼음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눈이 다 고약한 건 아니다. 치운 눈을 화단에 쌓아두면 봄에 눈이 녹으며 식물들에 물을 공급해줄 수 있다.

행복한 가드닝

행복한 가드닝

내 삶은 전원생활을 하기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하다. 도시에서의 삶 속에 자연은 늘 창밖에 있었다. 묵음 처리된 화면처럼 소리 없이 창밖에서 때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소리를 없애면 세상 무서운 호러 영화도 우스운 분장효과로만 보이듯, 창 하나를 두고 그렇게 자연은 그리 두려울 것도 다정할 것도 없는 현상일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늘 날씨에 노심초사다. 눈뿐만이 아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각종 물품을 동여매느라 정신없고, 폭우엔 하천의 범람을 걱정한다. 교통정보보다 날씨예보가 우리 삶에서 훨씬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 자연과의 몸살이 몸에 변화를 준 것도 사실이다. 추운 날, 더운 날 할 것 없이 자연에 노출이 되다 보니 늘 달고 다녔던 두통과 코막힘 증상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과학적인 분석은 모르지만, 이게 내 몸이 자연에 부대끼며 생겨난 일종의 탄력임을 깨닫는다. 묵음 처리된 창밖의 자연은 우리 몸에 경고를 못 보낸다. 창문을 열면 들리지 않던 화면에 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 그게 어떤 소리든,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오경아 정원디자이너 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