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영동지방의 폭설예보다. 설악산 인근에 내리는 눈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눈을 치우는 속도가 내리는 속도에 따라 잡히면 큰일이다. 눈이 종아리를 웃돌 정도만 되어도 여닫이문은 그 어떤 힘으로도 열리질 않는다. 다행히 한옥은 미닫이문이 많아 집 탈출은 가능하지만, 문제는 대문이다. 대문까지 10m 남짓한 길을 내는데도 몇 시간이 걸리고, 대문이 열리려면 그 반경을 다 치워야 한다. 그것도 얼기 전에. 그렇지 않으면 세상 부드러워 보이는 눈이 곡괭이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차갑고 쌀쌀맞은 얼음덩어리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눈이 다 고약한 건 아니다. 치운 눈을 화단에 쌓아두면 봄에 눈이 녹으며 식물들에 물을 공급해줄 수 있다.
내 삶은 전원생활을 하기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하다. 도시에서의 삶 속에 자연은 늘 창밖에 있었다. 묵음 처리된 화면처럼 소리 없이 창밖에서 때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소리를 없애면 세상 무서운 호러 영화도 우스운 분장효과로만 보이듯, 창 하나를 두고 그렇게 자연은 그리 두려울 것도 다정할 것도 없는 현상일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늘 날씨에 노심초사다. 눈뿐만이 아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각종 물품을 동여매느라 정신없고, 폭우엔 하천의 범람을 걱정한다. 교통정보보다 날씨예보가 우리 삶에서 훨씬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 자연과의 몸살이 몸에 변화를 준 것도 사실이다. 추운 날, 더운 날 할 것 없이 자연에 노출이 되다 보니 늘 달고 다녔던 두통과 코막힘 증상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과학적인 분석은 모르지만, 이게 내 몸이 자연에 부대끼며 생겨난 일종의 탄력임을 깨닫는다. 묵음 처리된 창밖의 자연은 우리 몸에 경고를 못 보낸다. 창문을 열면 들리지 않던 화면에 소리가 들려 올 것이다. 그게 어떤 소리든,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오경아 정원디자이너 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