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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현도의 퍼스펙티브

‘미군 인명 피해’ 미국 보복 천명에 긴장하는 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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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제적 확전 우려 높아지는 중동 정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6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124일을 맞았다. 기존 최장 기록은 2014년의 가자 전쟁이었다. 당시 7월 8일부터 8월 16일까지 50일간 전쟁이 벌어졌다. 이번 전쟁 기간은 2014년의 배 이상으로 길어지고 있다.

전쟁 발발 직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자. 지난해 9월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의에서 미국 주도 아래 독일·아랍에미리트(UAE)·유럽연합(EU)·이탈리아·인도·사우디아라비아·프랑스는 중요한 합의를 했다. 바닷길과 철로를 이용해 인도~UAE~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스라엘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인도~중동~유럽의 경제 회랑 건설이다.

이라크 국경지대 미군 기지 드론 공격 받아…사망자 3명 발생
공격 배후 의심받는 이란에 대한 미국 내 여론 극도로 악화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124일, 최장 중동 전쟁 기록 경신
예멘 후티 반군, 화물 항로 봉쇄…민족 갈등 얽혀 복잡한 양상

미국 전략 폭격기인 B-1B 랜서가 지난 1일 텍사스주 다이스 공군기지에서 출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일 친이란 세력 거점 85곳을 폭격하고 추가 공습을 예고했다. [UPI=연합뉴스]

미국 전략 폭격기인 B-1B 랜서가 지난 1일 텍사스주 다이스 공군기지에서 출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일 친이란 세력 거점 85곳을 폭격하고 추가 공습을 예고했다. [UPI=연합뉴스]

열흘 뒤인 지난해 9월 20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매일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머지않다는 걸 암시했다. 이틀 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역사적 평화라는 더 극적인 돌파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아랍 국가와 수교하고 그다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네타냐후 총리가 제시한 해법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해법이 실현되기 직전에 와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스라엘은 2020년 미국 백악관에서 UAE·바레인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수교하면 아브라함 협정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전체 아랍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98%의 아랍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친구가 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환상을 버릴 것이고, 그러면 평화가 온다는 구상이었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논의에 찬물

지난해 9월 29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중동지역은 지난 20년보다 현재가 더 평온하다”며 중동 평화 낙관론을 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극적인 수교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1일 이란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 장관이 나섰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화로 설득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막겠다고 언급했다. 다음 날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경주에 질 말에 내기를 걸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우회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지 말라고 충고하고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라는 훈기를 차단하는 얼음물을 끼얹었다. 수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마스를 무시하고 도모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반이스라엘 공동 전선 강화

이스라엘이 영토 침범을 당한 건 1973년 10월 이집트의 기습 공격 이후 50년 만이었다. 그것도 다른 나라 정규군이 아니라 무장 조직이란 점에서 치욕적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가자지구를 맹폭격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폭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사망자는 2만6000명을 넘었다. 죽은 사람의 60% 이상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건물의 70%가 파괴됐고 주민의 80%는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막으려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쪽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주민을 대피시키고 대응 공습으로 맞섰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아덴만에서 홍해로 들어가는 길목인 바불만답 해협을 막았다.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 재개와 공격 중단을 요구 사항으로 내세웠다.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과 관련된 상선과 화물의 이동을 막을 뿐 아니라 미사일이나 드론으로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은 3년 만에 다시 후티 반군을 국제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미국이 영국과 함께 폭격을 가해도 후티 반군은 물러서지 않는다.

이슬람 수니파인 하마스와 달리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은 시아파다. 그중에서도 헤즈볼라는 12이맘 시아파, 후티 반군은 5이맘 시아파로 서로 다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이란 공통의 목표를 향해 공동의 적 이스라엘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튀르키예, 쿠르드 지역 폭격

중동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이번 전쟁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쿠르드와 발로치가 왜 갑자기 언급되는지 의아할 것이다. 튀르키예는 지난달 13일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을 폭격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에 군을 주둔하고 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의 쿠르드가 튀르키예의 쿠르드와 연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란은 이틀 뒤인 지난달 15일 이라크 쿠르드 지역 중심도시 에르빌의 한 건물을 미사일로 파괴했다. 이란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거점이다.

이란은 다민족 국가다. 유일한 공식 언어인 페르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60%다. 그다음으로는 아제르바이잔어와 쿠르드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 양쪽 모두 분리독립 세력이 활동한다. 이란의 분열을 노리는 미국과 이스라엘로서는 유용한 협력 세력이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분리독립 세력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믿는다. 중동 지역에서 쿠르드족과 이스라엘은 특별히 우호적이기 때문에 이란이 경계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발로치족 역시 마찬가지다. 발로치족은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이란·파키스탄에 나뉘어 살고 있다. 이란과 파키스탄에는 발로치 분리독립 단체가 활약한다. 파키스탄의 발로치 분리독립 세력이 이란으로 들어와 테러를 저지르는데 파키스탄은 제대로 막지 못했다. 이란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반이란 성향의 발로치와 반시아파 성향인 IS를 지원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난달 15일 파키스탄 발로치 지역과 시리아 이들립의 IS 거점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파키스탄도 이란 내 발로치 분리독립 세력을 공격했다. 파키스탄으로선 이란이 자국 영공을 침해하였기에 맞대응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공격 대상은 파키스탄의 골칫거리인 발로치로 삼았다. 이렇게 중동 지역의 취약한 안보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진 못했지만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안고 있던 문제점이다. 이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통에 터져 나왔다.

미군 기지, 석달간 165차례 피습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과 이라크 이슬람 저항단체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정권 타파라는 대의를 위해 연대한다. 이란이 말하는 저항의 축으로 반미와 반이스라엘 공동 전선이다. 이라크 이슬람 저항단체라는 말은 간판일 뿐, 사실상 주축은 아부 마흐디 무한디스가 지휘했던 카타이브 헤즈볼라다. 그는 2021년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솔레이마니와 함께 미국의 드론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7일부터 지난달 29일까지 미군 기지는 165차례 공격을 받았다. 특히 지난달 28일 드론 공격으로 미군 세 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크게 다쳤다. 미국은 이라크와 국경 지역에 있는 요르단의 타워22 기지가 공격을 받아 미군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르단 정부는 자국 영토가 공격받은 적이 없다며 미국 발표를 부인했다.

이라크 이슬람 저항단체는 공격 직후 성명서에서 다섯 곳의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의 세 곳(탄프·루크반·샷다디)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즈불룬 해군 시설(하이파), 이라크 쿠르드 지역의 에르빌 공항 근처다. 미군 기지를 공격한 이유로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주민 학살을 들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놀란 이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군 세 명이 목숨을 잃은 건 바이든 행정부에 재앙이다. 더욱이 미국 내 반이란 여론이 심상치 않다. 공격의 배후인 이란을 가만히 둬선 안 된다는 강경 여론이 끓어오른다. 일단 바이든 행정부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보복하겠다며 이란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군 기지 공격을 주도한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이라크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다시는 미군 기지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단히 이례적이다. 문제를 정리했으니 미국은 보복하지 말라는 신호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무시했던 전임 정부의 외교 장관(모함마드 자바드 자리프)에게도 조언과 도움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온다. 의의로 강경한 미국의 태도에 놀란 이란은 혁명수비대를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이란 본토나 이란 사람이 희생돼선 안 된다고 하면서 만일 공격을 받으면 반격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3일 이라크와 시리아 내 친이란 세력 거점 85곳을 폭격하며 추가 공습을 예고했다. 다만 이란 본토를 공격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전선을 더 확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란과 친이란 세력의 자제력이 시험대에 오를 상황이다. 확전이 없길 바란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