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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동의 최초의 질문

과학과 인문의 결합이 중요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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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마틴사가 공동으로 초음속 여객기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2003년 콩코드기가 운행을 중단한 지 20년 만에 초음속 여행에 대한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하다. 44명의 승객을 태우고 시속 1500㎞에 가까운 속도로 서울에서 LA까지 6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콩코드의 사례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음속 돌파 시의 충격소음 문제도 75데시벨 수준, 즉 자동차 문을 세게 닫을 때 나는 정도로 크게 낮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록히드마틴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뛰어들고 있다고 전해진다. 인류가 새로운 신기술로 물리적 거리라는 자연의 한계를 한 번 더 돌파하는 또 다른 사례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기술 발전은 필연적’ 주장은 잘못
인간 의지의 진화가 투사된 결과
일류는 비전, 이류는 기술 만들어
미래 향한 통찰이 기술 선도해야

기술의 사회적 파급효과 생각해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 마틴이 공동 개발한 실험용 초음속 제트기 X-59가 지난달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팜데일에서 공개됐다. [AFP=연합뉴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 마틴이 공동 개발한 실험용 초음속 제트기 X-59가 지난달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팜데일에서 공개됐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이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파급효과를 생각한다면 기술적 성취의 하나로 마냥 기쁘게만 지켜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선 승객 한 명당 탄소배출량이 기존 항공기 여행에 비해 수 배에 이르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터라 벌써부터 기후환경에 재앙적 기술이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높은 연료소모량이나 낮은 기체회전율 등을 고려할 때 요금 또한 비싸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기술발전의 혜택을 보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술자들은 늘 더 높은 성능을 목표로 밤낮없이 기술 개발에 목숨을 걸지만, 정작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하는 데 쓸 시간은 많지 않다.

이런 현상은 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18년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고쳐 주류 언론과 같은 공론장의 정제된 의견이 아니라 친한 이용자들의 의견을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알고리즘을 개발한 기업가와 기술자들은 사용자관여(user engagement)를 강화해 이용시간을 늘리고자 밤낮 고민했을 것이고, 기대대로 회사의 수익은 급증했다. 그러나 미 의회청문회에서도 밝혀졌듯 사용자들이 자기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커뮤니티별로 나누어지는 현상이 심화하였고,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 간에 사회적 증오와 갈등이 증폭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기술주도 시대의 삶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경주용 자동차처럼 우리 눈앞에 쏜살같이 다가오는 기술주도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이다. 이 시대 기술자와 기업가들은 ‘기술발전은 필연적이다’라고 말한다. 초음속 여객기가 되었건, 사용자관여를 증강하는 알고리즘이 되었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술발전은 거부할 수 없는 추세이며, 혹여 문제가 있더라도 또 다른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단연코 필연적인 기술은 없다. 자연진화와 기술진화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은 유전자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를 기반으로 변이가 생성되고, 그 가운데 당시 환경에 가장 적합한 변이만이 선택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즉, 자연은 진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의 의지를 반영해 변이가 생기고, 인간이 스스로 상상한 비전에 따라 대안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능동적 방식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기술 발전은 자동적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의지의 진화가 투사된 결과물이다. 기술발전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인간을 주체적 의지 없이 신기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물건처럼 간주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다. 기술발전의 미래는 인간이 무엇을 소망하는지에 달려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포캐스팅’(forecasting)이라고 하는데,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어서는 ‘백캐스팅’(backcasting)이 더 중요하다. 백캐스팅은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 인간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부터 단계별로 무슨 기술이 필요할지, 거기에 맞추어 어떤 제도변화가 필요한지를 역으로 정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포케스팅이 지금까지의 추세를 연장하여 미래를 짐작하는 수동적인 과정이라면, 백캐스팅은 인간의 의지를 담은 미래의 비전으로부터 현재의 전략을 정해나가는 적극적인 과정이다. 동물도 원초적인 수준에서 포캐스팅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백캐스팅을 하지는 못한다. 오직 상상하고 소망하는 힘을 가진 인간만이 백캐스팅을 할 수 있다.

백캐스팅의 관점에서 본 기술

백캐스팅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더 포용적인 사회, 양극화와 극단적 갈등이 없는 사회, 공감 속에 모두가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는 사회를 꿈꾸지 않겠는가. 그런 비전을 달성하는데 초음속기 기술이나, 사용자를 묶어 두는 데 초점을 둔 새로운 소셜네트워크 알고리즘이 과연 어떤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자와 경영자가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구상할 때 더 높은 기술적 성능 못지 않게 인간과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인문적 통찰을 함께 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류는 물건을 만들고, 이류가 기술을 만들어 낼 때, 일류는 비전을 만든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다.

더 좋은 기술을 꿈꾸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미래에 대한 통찰이 그 기술의 발전방향을 선도해야 한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기술의 혁신과 인문정신의 도약이 함께할 때 비로소 세계가 공감하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