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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文質彬彬(문질빈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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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文(글월 문)’의 본래 뜻은 ‘무늬(꾸밈)’이다. ‘化(화할 화)’는 ‘변화’ 즉 A에서 B의 상태로 바뀌는 현상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따라서 ‘문화(文化)’란 전에는 무늬(꾸밈)가 없는 야생(野生)이었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인공의 무늬가 가해져 ‘무늬화’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문화는 다양한 방면에서 누적·발전하며 역사를 이루지만,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인 ‘야생’은 발전이나 누적이 없고 역사(史)도 없다. 야생의 ‘야(野)’는 변하지 않는 본 ‘질’(本‘質’)이다. 그러므로 문(文)은 곧 사(史)이고, 야(野)는 곧 질(質)이다.

文: 꾸밀 문. 質: 질박할 질, 彬: 빛날 빈. 문화적 꾸밈(文)과 야생의 바탕(質)이 잘 어울려 빛남. 34x68㎝.

文: 꾸밀 문. 質: 질박할 질, 彬: 빛날 빈. 문화적 꾸밈(文)과 야생의 바탕(質)이 잘 어울려 빛남. 34x68㎝.

공자는 본바탕인 질(質)이 꾸밈인 문(文)보다 많으면 야성적이고, 이와 반대인 경우를 문화적이라고 하면서, 문화의 세련미와 야성의 질박미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상태를 ‘문질빈빈(文質彬彬 彬:빛날 빈)’으로 표현했다. 아울러, “‘문질빈빈’한 연후에 비로소 군자이다”라고 했다. ‘문질빈빈’은 공자 미학의 이상이자, 훌륭한 인품의 지향점인 것이다. ‘문질빈빈’은 역사와 야생의 조화라는 뜻에서 ‘사야(史野)’라고도 한다.

지나치게 문화적인 ‘세련’은 숨을 막히게 하고, 무례한 ‘질박’은 황당하게 한다. ‘문질빈빈’한 그대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