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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선데이] “대통령에 질문 못하면 민주사회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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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호 29면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올해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비판을 많이 받는다. 화살은 여러 방향에서 날아드는데 하나는 언론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정책연구기관인 ‘백악관전환프로젝트’에 따르면 바이든은 취임 첫 해 기자회견을 9차례 열었고 언론과의 인터뷰는 22차례 가졌다. 이는 1989년 취임한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이후 30여년 만에 가장 적다. 소통의 질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비공식적인 질의응답을 즐겼는데 기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백악관 기자단은 짧은 질의응답만으로는 대통령의 생각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늘리도록 요청했다. AP통신의 비판이 매섭다. “가장 투명한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정부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
미 바이든 첫해 절반도 안돼
지도자와 국민간 진정한 소통은
얼굴 보고 목소리 들어야 가능

ON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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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한국의 사례를 안다면 억울함을 호소할 만하다. 집계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5년 임기를 통틀어 4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은 3차례, 문재인 전 대통령은 9차례 국내 언론과 공식 기자회견을했다. 이는 바이든이 임기 첫해에만 행한 기자회견 횟수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당연히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소통 부족에 대해서도 쓴 소리가 나왔다. 취임 첫 해 기자회견을 생략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음해 처음 한 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사전에 전달받아 답변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큰 비판을 자초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고 했다가 이후 기자회견을 충분히 열지 않으면서 비판을 받았다. 소통을 강조하며 청와대를 나와 용산으로 옮긴 윤석열 대통령도 도어스테핑 중단이나 기자회견 횟수 등 지금까지로만 보면 별반 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언론 소통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작동 상태를 보여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는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며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동시에 지도자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지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고 지도자의 생각과 정책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매개체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언론 소통은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한지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기능한다.

지도자와 국민 사이의 진정한 소통은 내용의 전달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감정의 공유다. 심리학자 앨버트 메라비언은 인간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판단할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으로 메시지 내용과 음성, 그리고 용모와 자세, 제스처 등 몸짓언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들의 비중은 7대38대55라는 ‘메라비언의 규칙’을 주장한 바 있다. 대중 앞에서 직접 말하지 않을 때 소통의 효과는 최대 7%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뒤집으면, 지도자가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로 나설 때 국민들과 100%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말이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이 지도자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자회견이 필요한 이유다.

지도자가 국민들과의 감정 공유에 실패했을 때 불통이라는 비판이 빗발친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는 그의 소통 방식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숄츠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 등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 숄초마트(Scholzomat, 숄츠와 기계를 뜻하는 Automat의 합성)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국민들과의 감정 공유에 실패해 자신이 차가운 기계로 느껴지게 함으로써 정치적 동력까지 위협받게 됐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훌륭한 정책만으로 지도자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과 몸짓, 목소리를 통해 내용이 전달될 때 비로소 감정의 공유를 느끼고 완전한 소통을 경험하며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게 된다. 미국 백악관의 최장수 출입기자였던 헬렌 토머스가 “미디어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며 대통령 기자회견은 그것의 가장 뚜렷한 증거”라고 했다. 토머스의 일갈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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