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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석의 100년 산책

지정학적 운명 아닌 역사적 창조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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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6·25전쟁 73주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의 지정학적 연구에 관한 저서를 소개 권고했다. 다른 논평은 없이 중국 이해와 관계 개선에 관한 두 번째 추천서였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첫 중국 대사로 노영민 전 의원(이후 문 대통령 비서실장이 됨)을 임명했다. 중국에 관한 관심과 열정이 두터웠다. 집권 기간 중 미국에 대한 비판은 있었어도 중국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그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의 몫이다. 작년에 주한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를 불러 대중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훈시를 했을 때도 문재인 전 정부 인사들은 침묵을 지켰다. 국민은 자연히 앞으로 민주당의 정치 방향과 성격이 어떨 것이라는 관심과 판단을 갖게 됐다.

필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6·25와 같은 정치적 사건에서 지정학적 해명과 연구가 어느 정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함이다. 세계지도는 지구 탄생 때부터 주어진 운명적 유산이다. 바꿀 수도 없고 달라질 수도 없다. 자연적으로 결정지어진 전제 조건이다. 공간적 자연 질서는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주어진 기정 조건이다.

세계지도는 주어진 전제 조건
지정학이 역사 만들지는 못해

중국, 인문학적 전통 스스로 포기
일본, 서구와 정신적 동질성 갖춰

‘자유와 인간애 구현’ 실천하는
문화강국 이상 후대에 물려줘야

역사는 인간의 시대적 선택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역사는 그런 결정된 공간적 여건과 기반 위에서 벌어지는 민족과 인류의 목적과 선택에서 이루어진다. 시간과 시대적 차원의 유산이다. 지정학적 자연은 인간 역사가 이용할 수 있고 긍정과 부정적 선택을 할 수 있어도, 역사를 만들거나 바꾸지는 못한다. 역사는 인간의 시대적 선택에 따른다. 영국과 일본은 유럽 대륙이나 아시아 대륙에 비하면 좁은 국토와 민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대륙과 일대일로 대처했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근대에 와서는 문화적으로 대륙보다 우위의 창조력을 갖추고 있다. 한반도는 그 중간 정도의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로 대처해 왔다. 우리는 그런 지정학적 여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살면서도 우리 민족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는 차이가 있고 때로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 왔다. 한글과 그 문화적 업적과 영향을 지정학적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나 개인도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를 도와주던 마우리 선교사(1880~1971년)가 제안해 왔다. 중국 북경 대학으로 간다면 학비와 생활비까지 도와줄 수 있는데 어떻겠느냐고. 나는 중국어도 모르고 중국 책을 읽어본 적도 없어 대학에 간다면 일본 도쿄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내 뜻을 받아들인 마우리 선교사는 도쿄 와세다 대학교 호아시 리이치로(帆足理一郞) 철학 교수에게 소개와 추천 편지를 주었다. 호아시 교수와는 오랜 친분을 갖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의 동지였다. 나는 중학생 때 그 교수의 책을 읽었고 감명을 받은 바도 있어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 혜택으로 호아시 교수의 많은 지도와 도움을 받았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때 나의 선택이 옳았다. 그 당시 북경 대학에서 수학한 연세대의 교수와 함께 있으면서 북경 대학의 학문적 수준과 국제적 위상이 일본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유구한 문화적 유산에서 본다면 아시아에서 중국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다. 그러나 미래 세계라는 관점에서 비교한다면 일본의 장래가 더 희망적이다. 마오쩌둥을 영도자로 따르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는 중국 정신문화는 우리보다도 후진성을 자초하는 실정이다. 중국과 함께 하는 북한과 일본에 가까운 편인 한국을 비교한다면 그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기 어렵다. 그것은 일본 자체의 창조적인 문화보다는 근대 이후의 서구나 세계 문화와의 정신적 동질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공산주의 정권은 중국의 존경스러웠던 인문학적 전통을 스스로 포기하는 과오를 범했다. 지금은 한문(漢文) 문화와 일본 문화 그리고 한국 문화권이 공존하는 위상으로 바뀌고 있다. 선의의 정신사적 경쟁이 지속될 것이다.

전쟁 없는 평화, 세계사적 사명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중국과 한국을 큰 산과 작은 산으로 비유할 정도의 지정학적 사상을 갖고 있었다면 친중국 정책이 친 자유세계보다 유리하며 그것이 지정학적 유산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서는 당분간 그 방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또 정치계의 흐름을 보아 중국과 북한은 하나가 되었는데 우리는 같은 하나가 될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재임 기간 친북 정책을 추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재임 기간의 정치적 노력을 윤 정부가 역행한다고 불만을 노출해왔다. 지금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발언을 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사회에 사는 편이 전쟁보다는 좋다는 뜻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국가적 노력은 전쟁을 부추기는 불장난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북한 김여정의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전쟁은 역사에서 최대의 악이다. 선한 질서와 인간의 가치에 위배해서 악을 조장하고 있는 북한 공산 정권을 억제해서 전쟁 없는 평화를 유지하자는 세계사적 사명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아니기를 바란다.

긴 세월이 지나기 전에 무력, 부강을 꿈꾸는 공산 정권보다는 문화 강국으로 공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이상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 우리 시대의 사명은 막중하다. 그 목적을 위해 선택할 최선의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때가 지금이다. 역사는 지정학적 공간의 유산이 아니다. 자유와 인간애를 구현, 실천하는 국가가 선한 열매를 이웃 나라에 베푸는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