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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괄목상대(刮目相對)와 여몽(呂蒙)

중앙일보

입력

괄목상대. 게티이미지뱅크

괄목상대. 게티이미지뱅크

‘몸이 천 냥이면 눈은 팔백 냥이다’, 이런 속담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안구(眼球)는 얼추 탁구공 크기다. 신체 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기관이다. 포유류뿐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눈이 몸에서 차지하는 부피의 비율은 이처럼 미미하다. 하지만 이 속담에서 보듯 귀하게 대접받고 있고, 눈에 대한 비유적 표현들이 지구촌에 꽤 많다. 눈에 대한 비유라면 더 주목받게 되고, 피부에도 와 닿아 기억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사자성어는 괄목상대(刮目相對)다. ‘괄목’은 ‘눈을 비비다’라는 뜻이다. ‘상대’에는 ‘상대방을 대하다’라는 뜻도 있다. 이 둘이 합쳐져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대하다’라는 의미가 쉽게 완성된다. 요즘에도 자주 쓰이는 이 ‘괄목상대’의 유래는 서진(西晉)의 역사가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오(吳)나라 장수 여몽(呂蒙)의 일화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 특출한 장점 몇 개는 지녔다. ‘강동의 호랑이’ 손견(孫堅)의 차남으로 태어나 오나라를 거의 50년 가까이 다스린 손권(孫權)은 풍채도 당당하고 다방면으로 역량이 걸출한 보스였다. 그는 라이벌 조조나 유비에 비해 수군(水軍) 전술에 밝았고 수성(守城)에 강했다. 이 손권이 매우 아낀 인물 가운데 ‘괄목상대’의 주인공 여몽 장군도 포함된다.

여몽은 빈궁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군문(軍門)도 병졸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차례로 진급했고 마침내 그 실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오나라의 촉망받는 장군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소위 학식이라는 것이 매우 부족했다. “박사가 되라는 게 아닐세. 학문을 닦아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 되라는 말이야.” 손권은 어느 날 여몽에게 보스이자 멘토로서 이런 조언을 한다. 즉, 약점을 보완하라며 그 수단으론 독서를 권한 것이다. 손권은 ‘손자병법(孫子兵法)’, ‘육도(六韜)’, ‘좌전(左傳)’, ‘국어(國語)’, ‘사기(史記)’, 그리고 ‘한서(漢書)’를 여몽에게 추천한다. 비록 어투는 따뜻한 톤이었으나, 그 내용은 새 임지로 떠나는 여몽을 향한 손권의 인생 내공이 실린 차가운 맞춤형 훈시였다.

여몽은 책을 읽기 시작한다. 손에서 책을 거의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평소 자신의 약점을 괄시하던 학식 깊은 노숙(魯肅)과 단 둘이 긴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갖는다. 노숙은 적벽대전의 영웅 주유(周瑜)가 급사하자 뒤를 이어 오나라 군대의 대도독을 맡은 인물이다. 그날 두 사람의 긴 대화가 끝날 무렵 여몽의 학식이 깊어진 것에 놀란 노숙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노숙의 칭찬을 받아, 마주 앉은 여몽이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보태는데 바로 여기에 ‘괄목상대’ 네 글자가 선명히 등장한다. “모름지기 선비란 3일 만에 재회해도 서로 눈을 비비고 상대의 변화를 파악하려 노력해야 맞겠죠.” 여몽의 의미심장한 이 마무리 발화에 나온 ‘괄목상대’는 차츰 한·중·일 3국 모두가 선호하는 사자성어로까지 성장했다.

훗날 여몽은 백전노장 관우를 굴복시켜 최후를 맞게 한다. ‘괄목상대’의 중요성은 당시 여몽이 관우를 사로잡기 위해 수립한 탁월하고 치밀한 전술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은 한 개인에게 전부를 주진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여몽은 병치레가 잦았다. 그를 아끼던 손권의 극진한 최후 병간호에도 불구하고 여몽은 42세라는 안타까운 나이에 병사했다.

참고로, 현대 중국에서 ‘괄목상대’는 괄목상간(刮目相看)으로 쓰인다. 맨 끝 한자가 바뀌어 ‘보다’라는 세부 동작이 더 강조되고 있다.

개인의 삶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동반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후보자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여러 검증과 절차가 이어질 것이다. 또한 신중한 유권자라면 투표 당일까지도 후보들에 대한 최종 평가에 어떤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할 것이다. 여기에는 ‘괄목상대’를 소망하는 마음이 당연히 포함된다. 설령 이번 총선을 사흘 정도 앞둔 시점이라도 후보나 유권자가 잠시 자신의 ‘눈을 비벼볼’ 시간은 충분하고도 넉넉하다.

글 홍장호 ㈜ 황씨홍씨 대표

홍장호 필진. 차이나랩

홍장호 필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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