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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선영의 마켓 나우

19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많은 경제학자가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작년 경제성장률은 1.4%이다. 위기가 있었던 1998년 IMF 외환위기(-5.1%),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0.8%), 2020년 코로나 위기(-0.7%)를 제외하고 최저 수준이다.

우리 경제에는 1980년대 개혁, IMF 개혁 이후에 개혁이 없었다. 현재 저성장은 ‘구체제’의 임계점을 보여준다. 저성장, 고물가, 국제수지 악화라는 상황은 ‘새로운 경제 문법의 설계’, 즉 개혁을 요구한다. 김재익(1938~1983)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이 시대 경제개혁의 설계에 영감을 줄 수 있다. 1980년대 초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유사하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2003)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의 한국 땅은 바야흐로 난세였다. 10·26사태로 난세가 시작되었지만, 외채·인플레이션·노사갈등·부패문제가 뒤엉켜있었다. 따라서 정치·경제·사회는 새로운 문법으로 대응해야 할 상황이었다.”

1980년대 초의 한국 경제는 정부주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축적되어 온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체질과 산업구조의 왜곡 등 각종 구조적 문제로 인해 지속적인 성장의 기틀이 크게 약화하여 있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제2차 오일쇼크, 그리고 냉해로 인한 벼농사의 흉작 등 경제외적인 문제들이 겹쳐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국면이었다. 1980년 GDP 실질성장률은 집계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1.6%)를 기록했다.

저성장, 고물가, 국제수지 악화의 삼중고라는 단기적인 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함과 동시에 국가 경제가 지향해 나가야 할 새로운 방향과 비전을 정립하고 지속적인 안정 성장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차원 높은 정책을 펼 수 있는 경제 리더십이 절실했다. 김재익은 1980년 9월부터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45세에 순직할 때까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김재익 수석은 한국경제의 제2 도약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물가안정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하며 동시에 개방과 자율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러한 정책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치 리더십의 과감한 결단 없이는 채택하기 힘들다.

한국의 교육 수준과 행정 경험이 글로벌 수준으로 높아진 지금, 우리에게 김재익 수석과 같은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재가 개혁정책을 펼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