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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바스티드의 집합적 아름다움, 몽파지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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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13세기 중부 유럽에는 ‘바스티드’라는 신종 부동산 개발사업이 유행했다. 사업가적 영주들이 방치된 황무지나 산림지에 새마을을 건설해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원주인인 영주와 나누는 일종의 합작 사업이었다. 프랑스 남부에 주로 집중된 바스티드는 남부 독일과 웨일즈까지 700여 개소가 건설되었다.

도르도뉴의 몽파지에는 전형적인 바스티드로, 프랑스 정부가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마을’로 공식 인증한 마을이다. 1284년 영국 왕인 동시에 아키텐 공작이었던 에드워드 1세는 비롱 영주와 협약해 ‘평화의 산’이라는 몽파지에를 건설한다. 산림 고원에 400m×220m의 평지를 개간해 376세대의 택지를 조성했다. 입주 희망자에게 10년간 토지 사용료를 면제하고 주택 건설용 자재를 무상 제공하되, 단 3년 안에 입주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바스티드의 주민에게는 세금과 임대료만 납부하면 소유와 매매의 자유가 보장되는 특권을 부여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3년 만에 2000여 주민의 새마을이 완성되었다.

공간과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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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완벽한 격자형 계획으로 165㎡(50평) 정도의 균일한 택지들로 이루어졌다. 주변 농토를 분양해 식료품의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인근 산지를 개간한 와인 생산이 주 소득이었다. 마을의 중심 한 블록을 비워 시장광장을 조성했다. 교회 광장이 중심인 기존의 중세 마을과 다른 상업 중심의 마을이었다. 광장을 에워싼 건물들에 전천후 이용이 가능한 아케이드를 두어 상업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사교와 모임의 중심 장소가 되었다.

몽파지에는 도로와 택지 등 8세기 전의 탁월한 도시계획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물들은 17세기까지 고딕부터 바로크 양식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돌집으로 통일되었고 고만고만한 높이와 크기다. 특별히 대단한 건물은 없으나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과 같으며, 광장과 골목의 여러 풍경은 ‘통일 속의 다양한’ 집합적인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한다. 현재도 여전히 인근 시골의 경제적 문화적 읍내 역할을 하는 살아있는 바스티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