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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위성만 우주청, 군사위성은 국방부…반쪽 사령탑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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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호 13면

‘한국판 NASA’ 우주청 5월 발족

다누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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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우주항공청 특별법(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2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로 불리는 우주항공청 설립이 확정됐다. 1958년 창설된 NASA는 비(非)군사적인 우주개발을 모두 관할하고 종합적인 우주계획을 추진한다.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는 “경제성이 있는 우주산업과 스페이스X(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같은 선봉장 육성을 위해선 우주항공청은 필수”라고 말했다.

“정부 기능 단계적으로 우주청에 이관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개청 시기는 오는 5월, 장소는 경남 사천이다. 관련 예산은 8000억원, 인력은 300명(연구 200명, 행정 100명) 규모다. 정부는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혁신 우주항공 기업 2000개 이상 육성 ▶50만 일자리 창출 ▶2045년 국내 우주산업 시장 규모 420조원 달성을 통한 세계 5대 우주강국 진입 등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우주항공청은 (한국이) 2032년 달 착륙, 2045년 화성 탐사라는 목표 달성을 통해 글로벌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는 위대한 발걸음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우주항공청 설립은 그동안 국내 과학·산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우주산업 컨트롤타워가 들어서면 관련 생태계 구축과 기술 경쟁력 제고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민간 주도 우주산업 발전을 체계화할 수 있게 된 점에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방효충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 수단에 국한됐던 글로벌 우주산업은 21세기 들어 민간 주도로 성장,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창출 산업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우주산업 분야에서 공동 연구·개발(R&D)의 체계화가 시급했는데 우주항공청을 통해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특히 우주산업은 외교·안보·국방 등의 분야와도 직결돼 ‘종합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컨트롤타워가 필수다. 그동안 국내 우주산업은 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가 역할을 분담해 전략을 마련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등의 국책 연구기관이 R&D에 매진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우주항공청이 설립되면 과기정통부와 산업부의 우주 관련 사무는 대부분 우주항공청으로 이관하고, 항우연과 천문연은 우주항공청 산하 기관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각에선 우주항공청이 자칫 ‘반쪽짜리 컨트롤타워’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외교·안보·국방 분야 정책 주체인 외교부와 국방부, 항공 정책과 규제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의 우주 관련 사무는 우주항공청의 업무 범위에서 제외돼 이관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우주항공청이 과학·기술·산업뿐 아니라 외교·안보·국방 분야에서 직접 상황을 조율하면서 우주산업 발전의 난점을 풀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물음표가 붙는 것이다. 예컨대 우주산업의 핵심 상용 기술인 위성은 국방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이대로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면 상용 위성 기술은 우주항공청이, 군사 위성 기술은 국방부가 맡는 식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일관된 정책 추진과 관련 R&D가 어려울 공산이 크다.

외교에서도 NASA 등과의 국제 협력 업무를 우주항공청이 수행해야 하는데, 외교부의 우주 관련 기능 이관이 없다면 외교부와 우주항공청이 같은 사안을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국책 연구기관 중에서는 우주 정책 관련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의 우주항공청 편입이 불발돼 비슷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자 우주항공청을 유치한 경남도청은 문제 제기에 나섰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23일 “우주항공청이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외교·국방·국토부의 우주 관련 기능뿐 아니라 STEPI 등 산하 기관의 연구 기능 모두를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구조로는 우주항공청이 본래 설립 취지답게 우주 분야 R&D와 정책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지사는 “단기적으로 모든 기능을 흡수할 수 없다면 (정부가) 장기 계획을 수립해 단계별 이관이 될 수 있도록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국방 분야의 경우 우주 안보 기능만은 우주항공청이 맡게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조직의 이관이나 파견 형태의 인력 교류는 계획하지 않고 있다. 이재형 과기정통부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장은 “외교·국방·국토부에서 추후에 이를 요청하면 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젊고 유능한 인사를 초대 청장 발탁해야”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호 발사 장면. 다누리호는 2022년 8월 5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 버럴 미 우주군 기지에서 팰컨9 로켓에 실려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의 첫 달 탐사선 다누리호 발사 장면. 다누리호는 2022년 8월 5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 버럴 미 우주군 기지에서 팰컨9 로켓에 실려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당장은 모든 정부 부처와 싱크탱크의 우주 관련 기능 흡수가 어렵더라도,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이관에 나서야 우주항공청이 비로소 종합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국책 연구기관들은 매년 정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간 잘 해왔던 검증된 분야의 기술 또는 정책 개발에만 관성적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우주산업에서 기존에 미진했던 분야 고부가가치 창출을 도모하려면, 우주항공청에 모든 우주 관련 기능을 모아 자연스럽게 이런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우려되는 문제는 인력 수급이다. 정부가 계획한 인력 300명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컨트롤타워에 걸맞은 우수 인력으로 이를 채우려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우주산업 분야 인력은 선진국 대비 열악한 육성 환경 탓에 지난해 기준 약 1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주산업 분야 인재 육성에 일찌감치 전념했던 미국은 NASA 소속 인력만 1만7000명이 넘는다. 익명을 원한 한 대학 교수는 “가뜩이나 인력 공급이 부족한데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 우주항공청에 들어가려는 인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 균형 발전 도모라는 정부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사천은 구직자 입장에선 비선호 격오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과학계 일각에서는 우주항공청의 입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열린 채용’으로 이 같은 우려를 극복한다는 방침이다. 이종호 장관은 “해외에도 NASA 등에서 근무한 외국인, 또는 한인이면서 이중 국적인 우수 인재가 많다”며 “이들도 많이 채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국내 산업체 종사자뿐 아니라 항우연과 천문연 등 국책 연구기관 소속 인력까지 누구나 우주항공청 공채에 지원해서 합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우주항공청 소속 임기제 공무원의 경우 직급 관계없이 기존 보수 체계의 150%를 초과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한편, 사천의 주택·교통 등 정주여건 지원에도 나서기로 했다.

한편, 조직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외국인 청장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우주산업 분야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은 삭제된 바 있다. 일반 연구직엔 외국인을 채용하더라도 청장은 내국인 임명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우주산업의 깜짝 강자로 떠오른 아랍에미리트(UAE)가 2014년 우주청을 만들면서 초대 청장에 30대 여성 과학자(사라 알 아미리)를 임명, 경쟁국 대비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빠르게 우주강국 반열에 오른 것처럼 한국도 젊고 유능한 인사를 초대 우주항공청장으로 발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일각에선 전문성뿐 아니라 정부와의 교류, 내부 조직원 결속 등에 능한 정치력까지 갖춘 인사가 청장이 돼야 첫 출범 조직의 애로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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