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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우리도 힘든데”란 이데올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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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켄 로치 감독님,

지난 주말 당신의 ‘마지막 장편’이라 불리는 영화 ‘나의 올드 오크’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이더군요. 어느 날 시리아 난민들이 이주해오면서 이 마을의 펍 ‘올드 오크’가 갈등의 무대로 떠오릅니다. 펍을 운영하는 TJ 밸런타인은 난민들을 선의로 대하려 하지만 단골인 그의 친구들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지요.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공적 공간에 ‘두건 대가리’가 못 들어오게 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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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배타 정서 아래에 인종적·문화적 거부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살기도 힘든데 왜 저 사람들까지 와서 더 힘들게 하느냐?”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지요. 그 마음, 왠지 눈에 익습니다. 한국에서도 “우리도 힘든데”가 이데올로기가 된지 오래니까요. 우리 살기도 힘든데 저 사람들은 뭐야? 우리도 참고 사는데 왜들 저렇게 난리야?

그렇지만 영화에 나오듯이 우리의 고단한 삶이 결코 ‘그들’ 때문은 아닙니다. TJ는 말하죠.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자를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한 사람을 비난하지.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쉬우니까.” 아, 순간 제 가슴에 서늘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당신에게 영화는 ‘올드 오크’ 아니었을까? 그렇잖아요. 소외된 퇴직자, 극빈층 싱글맘(‘나, 다니엘 블레이크’), 택배 종사자, 간병 노동자(‘미안해요. 리키’)…. 최근 당신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자기 나라에서 난민처럼 살아가는 이들이잖아요. 당신은 이번 영화에서 보다 직접적인 언어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거 같았어요. 아닌가요?

당신은 슬픈 이들에게 “말 대신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가진 연민의 힘이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해주길요.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