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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형기가 소리내다

이재명 헬기 이송, 부산대병원이 '노' 할 수 있도록 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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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흉기로 피습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헬기로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동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연합뉴스]

흉기로 피습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헬기로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동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은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었지만 그 후에 이어진 헬기 전원(轉院)은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의 피습과 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 응급 헬기를 이용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의사들이 목이 터지라 외쳤지만 누구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던 한국 의료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서울로 몰리는 환자 

 문제의 본질은 지방에 환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실력을 갖춘 의사와 시설 좋은 병원은 지방에도 많다. 하지만 지방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환자들로 지역 의료는 소멸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고속철도나 비행기로 이동하면 반나절 안에 서울 소재 유명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응급 헬기를 탔기 때문에 특혜 시비를 일으킨 게 특별할 뿐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당일 진료가 가능한데 이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상급종합병원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지만 병원들은 별로 경쟁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로 병원 앞이 북적거릴 테니까.

 따라서 지방에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해서 지역의료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는 해당 의대가 소재한 지역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환자가 없으면 수련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러면 환자는 서울로 더 올라갈 테니 악순환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를 더 많이 배출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의대생이 늘어나면 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교수진 증원이 필요하고, 교육 환경과 시설을 갖춘 병원도 확보해야 한다. 백 번을 양보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수련 과정을 마친 의사들은 환자를 찾아 결국 수도권으로 몰려들 게 뻔하다.

공공의대론 지역의료 못 살려   

 소아청소년과 ‘오픈 런’으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문제는 또 어떤가. 정부는 의사 수를 늘리면 인기과 경쟁에서 밀려난 의사가 어쩔 수 없이 필수 진료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위 ‘낙수 효과’를 노린다는 이 정책은 그 실효성을 차치하고라도 환자는 물론 의사에게도 매우 모욕적이다. 내 생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리는 필수 진료과 의사가 경쟁에서 밀려난 의사라면 누가 좋아할까. 사명감으로 필수의료를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의사가 입을 마음의 상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낙수 효과를 통해 필수의료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주장도 현실과 다르다. 매년 전체 전공의 지원자 숫자는 늘 모집 정원을 상회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대표적인 필수 진료과에 해당하는 소아청소년과·일반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에 지원한 전공의 숫자는 항상 모집 정원에 미달했다. 그러니 의사 수를 늘리면 낙수 효과를 통해 필수의료가 살아나리라는 기대는 이쯤에서 접는 게 옳다.

 한 번이라도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해 본 의사라면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 단체는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당했다. 부산에서 피습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굳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간 이 대표 사례에서 보듯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지역완결형과 한참 거리가 멀다.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가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진료와 치료를 끝내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는 응급의료와 필수의료에서 더 중요하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도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를 확고히 구축함으로써 지역의료의 소멸을 막기 위한 청사진이었다. 눈길을 끈 정책은 권역 책임의료기관에 지역 네트워크 병원 공급망을 총괄·조정하는 기능과 함께 성과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재원을 배분하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지역의료 소멸을 막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역 내 필수의료 네트워크는 정부의 기대처럼 공고해질지 몰라도 권역을 벗어나면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권역 책임의료기관인 부산대병원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대의 전문외상센터임에도 불구하고 권역 밖인 서울대병원으로 이 대표를 전원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줄곧 뒷짐을 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그 증거다.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갖춰야

 결국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는 권역 책임의료기관이 엄정한 문지기(gate keeper) 역할을 수행할 때 완성된다. 따라서 권역 밖, 예를 들어 지방에서 수도권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이송할지 말지 결정할 때 타당한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아무리 보호자가 원해도, 전원 받을 병원의 의사가 요청해도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게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렇게 돼야 “잘하는 병원이 있어서”, “정신적 지지를 해 줄 가족의 간호가 필요해서”라는 비의학적 이유를 대면서 권역을 넘나들려는 시도가 사라진다. 권역 책임의료기관의 문지기 역할이 제대로 작동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을 우회하면서까지 응급의료전달체계를 깡그리 무시해 놓고도 전원 받을 병원의 의사와 미리 얘기했으니 무슨 문제냐는 식의 후안무치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지역의료에 회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려면 지역의료의 소멸을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아프면 당장 본인부터 서울의 큰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으려는 위선부터 멈춰야 한다. 입만 열면 강조하는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의대 정원 확대로 지역의료가 절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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