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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막말 요란해도, 선거를 뒤집을 수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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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06면

이준웅의 총선 레이더 ③ 선거와 ‘부정적 캠페인’

총선이 90일도 안 남았다는데, 정작 유권자는 투표하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망연한 기분이다. 여야 정치인들 모두 남의 집에 불났다며 환호작약하는 사이, 정작 제집 떠내려가는 건 방치하고 있다. 보수 유권자는 묻는다. 여소야대 정국이 끝나고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면 도대체 무슨 법안이 통과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진보 시민은 궁금하다. 지금껏 과반 의석으로도 아무 일도 못 해 놓고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무슨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단 말인가.

부정적 캠페인이 우리 선거를 지배해서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부정적 캠페인에 열중해서 상대방을 비판하다 보면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안 하리라 유권자에게 다짐하고 약속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남을 욕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쩐지 이번 총선은 이런 반면교사마저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이미 어긴 약속을 다시 저버리고 있다는 체념적 비판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속 없고 실체도 없이 날탕으로 정파 간 이합집산에 대한 정략적 분석만 하는 선거는 보다보다 또 처음이다.

부정적 캠페인이라니까 2012년 이른바 ‘박근혜 비대위’ 총선이 떠오른다. ‘나꼼수’ 막말로 유명했던 그 총선이기도 하다. 정치적 충격으로만 보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민심이 대두하여 정치지형 자체를 바꾸었던 2000년 ‘숨은 보수’ 총선이나 2016년 ‘신여소야대’ 총선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당대 정치엘리트가 받았던 충격의 규모와 의외성으로 보아 그것들 못지않았던 게 2012년 총선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시민세력을 통합하여 민주통합당을 창당했다. 민주계열과 진보계열은 야권연대를 이루어, 집권 5년 차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MB) 정부의 실정을 공격했다. 야권연대는 몇 년 전 유행했던 ‘모든 게 노무현 탓이다’를 연상케 하는 ‘MB심판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오래된 BBK 의혹도 다시 꺼내 들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과 여당 정치인까지 사찰했다는 의혹을 증폭하기도 했다.

보수 여당은 당명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고, 공천규칙은 물론 정책 방향도 대폭 수정했다. 김종인을 끌어들여 경제민주화 정책을 내세우고, 이준석을 영입하여 젊은 보수를 강화한 것도 이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특유의 유보적인 자세를 보이며 여야가 백중이라고 보고했지만, 부정적 캠페인으로 기세를 올리는 야권연대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 와중에 ‘나꼼수’ 사태가 터졌다. 야권이 막말 파문에 빠져들어 자책과 대책으로 허우적대는 가운데 선거가 끝나고 말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보수 여당의 안정적인 과반 확보였다. 엄청난 기세로 소용돌이쳤던 네거티브와 막말 대잔치는 분명 돌풍을 일으켰건만 정작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몰아쳐 한국 정치를 4년 전 총선으로 되돌려 버린 듯했다.

〈그림 1〉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림 1〉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나는 선거 캠페인이 민심을 만들거나 바꾸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캠페인 기간 시민은 이미 정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지 기회를 볼 뿐이다. 정당의 현란한 공약과 정치인의 요란한 구호는 물론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마저 개별 유권자가 투표장으로 갈지 구실을 찾거나, 아니면 말지 핑계를 구하는 때일 뿐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2424명으로부터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보면, 여야의 부정적 캠페인은 분명 시민의 정치적 의견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핑계로 작용했다. 그러나 막말 파동 때문에 진보적 야권연대가 수도권에서 승리하고도 전국적으로 패배했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 〈그림 1〉을 보면, 오히려 총리실 민간인 사찰이나 MB심판론이 더욱 중요하다고 응답한 경우가 많은 가운데, 유권자는 그런 부정적 쟁점들을 염두에 두고서도 과거 지지했던 (단지 이름만 바뀐) 정당으로 되돌아갔다.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흐름은 2008년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했고, 2012년에는 나꼼수 막말도, 총리실 민간인 사찰도, 그리고 MB심판론도 주요 사안은 아니라고 응답했던 이들이다. 이들은 총선을 앞두고 나도는 온갖 네거티브와 막말을 무시하고 표표히 투표장에 나가 새누리당 후보를 찍고 돌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보다 2008년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던 유권자 가운데 세 부정적 캠페인 사안을 무시하고 2012년 민주통합당을 선택한 유권자는 훨씬 적다.

그러니 제발 투표할 구실을 만들어 달라. 구태여 상대방이 얼마나 못되고 못난지 떠들어 댄다 한들 그것이 당신을 지지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정당의 전략에 대한 교묘한 분석이나 선거구도 변화에 따른 득실 예측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유권자가 집을 나서서 투표장으로 향하는 건 아니다. 보수는 무엇을 지키고 이루겠다는 것인지 밝히고, 진보는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약속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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