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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본류가 된 ‘트럼피즘’…바닥 정서 읽는 외교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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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세계는 변화하는 미국을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미국 내에서 트럼프주의(트럼피즘)는 줄어들기보다 노골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첫 번째 대선 후보 경선인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가 15일(현지시간) 열렸는데, 예상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주의란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고립주의와 반(反)엘리트주의를 표방한다. 1950년대 미국 경제성장의 황금기를 재현하고, 총기 소유의 자유를 옹호하며 기독교 중심 미국의 전통적 가치 수호 등을 주장한다.

고소득층도 트럼프 지지 높아
누가 이기든 민심 반영 불가피
미국의 변화 대비한 외교 절실
지역사회·민간 접촉 확대해야

바이든 정책은 ‘착한 트럼피즘’일 뿐

지난 6일 미국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 유세에 참석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 미국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 유세에 참석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주의의 확산은 세계가 알고 있던 자유민주주의의 글로벌 리더 국가 미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 되면 트럼프주의는 곧 사라질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미국 내 트럼프주의의 확산은 도널드 트럼프의 차기 대통령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근본적인 미국 사회 변화의 본류로 주목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집권기에도 외교·무역 정책에서 보여준 것은 ‘착한 트럼프주의’였다. 민주당 정부라도 미국 국민 절반의 정서를 반영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임을 보여줬다.

지난 2020년 대통령 선거의 출구 조사 분석자료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평균 소득이 전체 유권자의 평균 소득을 넘는다. 이는 트럼프 지지 세력이 시골에 사는 고졸 이하 학력의 제조업 분야에서 실업자가 된 백인 계층이 아니라,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히스패닉, 인도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트럼프 지지는 다수를 이루고 있고, 흑인과 아시아 커뮤니티에서도 3분의 1 가까이가 트럼프의 정책을 다양한 이유로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의 재집권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은 근본적으로 변화한 미국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익숙했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이나 로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의 공화당이 이끌어 가는 미국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다. 미국의 민주당이 재집권하더라도, 미국의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행정부와 미국 사회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특정 행정부에 대한 대비책이 아닌 변화된 미국에 대한 범정부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이벤트성 정책공공외교 탈피해야

더욱 중요하고 장기적인 방안은 정책공공외교의 영역에 있다. 정책공공외교는 미국의 다양한 세력과 교류하면서 한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공간이다.

대미 정책공공외교는 다양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1990~2000년대 집중했던 방식에 머물러 있다. 워싱턴DC에서는 싱크탱크나 대학을 중심으로 유사한 주제의 세미나가 반복해서 개최된다. 참석자는 주로 교포나 유학생, 한국 전공 희망자, 한국에 근무했거나 한국인과 결혼한 소수 미국인 등이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의 주요 인사들은 대개 이런 행사에 많이 참석한다.

미대선 소득별 지지도

미대선 소득별 지지도

K팝과 한국 기업, 한국 드라마, 영화, 문화의 위상은 드높지만 대미 정책공공외교는 워싱턴DC 중심의 이벤트성이고, 국내 언론 보도를 위한 사진 촬영 세미나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는 선진국형 정책공공외교로 넘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여론 주도층이 주목하는 주요 언론 매체에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자주 출연해 한국의 여러 정책이 미국의 국익과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보좌진이 써주는 글에 의존하지 말고 앵커와 카메라를 향해서 본인의 철학과 세계관을 설파하고, 미국의 문맥에 맞게 미국 여론 주도층과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미국의 코스모스 클럽이나 육군해군 클럽(Army and Navy Club), 공화당 및 민주당 사교 클럽에서도 친목을 위한 만남이 지속해서 진행돼야 한다.

친 트럼프 인사와 접촉 늘려 나가야

접촉 인사의 범위도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초대되는 소수의 트럼프 행정부 인사는 지금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등을 돌린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민간 주관 국제회의에 친(親)민주당 인사뿐 아니라 친트럼프계 상·하원 의원, 미국 우선주의 싱크탱크 관계자도 초청해서 접촉면을 확대하고 지한파로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민간 교류를 확대해 문화적 친밀감을 키워야 한다. 현지에서 미국인과 교류하는 사람은 외교관이나 주재원, 교수·연구원 등이 있다. 여기에 주요 도시에서 살아온 이민 1· 2세대 교포 사회가 있다. 이들은 댈러스, 휴스턴, 애틀랜타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미국 민주당 강세 지역의 개방적인 미국 사회만을 접촉했다. 미국 중서부 및 남부 시골 지역의 미국 공화당원과 트럼프 지지자들은 6·25 전쟁 참전 용사가 아니라면 한국과 교류하거나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다.

미국의 동·서부 대도시 이외에 한국을 모르는 지역사회, 학교, 시민단체, 종교기관과의 인적 교류를 확대해서, 미국 정치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친선 관계를 다져야 한다. 양국의 대도시 엘리트 대학, 고학력, 전문직 등 여론 주도층 간에만 존재하던 교류 수준을 더 높여 한미 관계를 더욱 단단하고 뿌리 깊게 만들어야 한다.

일본, 유럽, 중동 등 주요 국가들은 이미 앞장서 가고 있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보았듯이 승부는 이미 정책공공외교의 장에서 결론이 나고, 투표함에 들어서는 것이다. 선진화된 정책공공외교 분야는 글로벌 중추 국가 한국에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지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발전시켜야 하는 영역이다.

김영준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