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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은 회를 안 먹는다고? 다양한 요리로 생선 즐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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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26면

[왕사부의 중식만담]  중국인에 특별한 생선 요리

추운 날 한창 기름기 오른 방어를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중국엔 생선회가 없지?

신장·칭하이·티베트·헤이룽장처럼 깊숙한 내륙이야 그렇다 치자. 수도 베이징과 바다에 붙어있는 상하이·광저우 같은 대도시 사람들도 회를 즐기지 않는다. 식생활이 다양해지며 회를 파는 식당들이 꽤 늘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식이다. 중국은 해안선 길이가 3만2000㎞(대륙 1만8000㎞, 섬 1만4000㎞)로 세계 여덟 번째다. 남북으로 긴 열대·아열대·온대 바다에서 온갖 해산물이 난다. 게다가 대륙을 관통하며 흐르는 황하·창장(장강)·주장 같은 큰 강과 그 지류들은 민물고기 보물창고 아닌가. 대만 또한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회 문화가 별로다.

갖가지 양념을 볶아 얹어내는 홍소석반어(紅燒石斑魚). 중국요리 대부분은 식재료를 익혀 만든다.

갖가지 양념을 볶아 얹어내는 홍소석반어(紅燒石斑魚). 중국요리 대부분은 식재료를 익혀 만든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현대사 격변기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내 부모님도 회를 입에 대지 않으셨다. 한국 음식을 주식으로 하면서도 회와 담쌓은 화교 친구들도 있다. 중국 사람들은 왜 회와 친하지 않을까, 주변에 물어봤다.

“지역마다 자랑하는 요리가 지천인데 날것을 굳이 먹을 이유가 없지.”

“익히면 풍미가 오르고 더 맛있는데 왜 생으로 먹어.”

“먼 옛날 일본은 중국처럼 조리법이 발달하지 않아 그냥 먹지 않았을까.”

물고기는 중국에서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많고 많은 기록 중 몇 가지만 보자.

▶춘추시대 성현인 공자는 첫 아들을 얻고 이름을 리(鯉·잉어), 자를 백어(伯魚)라고 지었다. 잉어는 중국에서 매우 상서롭게 여기는 생선이다. 백어는 물고기 중 으뜸이라는 뜻이니 세상에서 잉어처럼 값진 인물이 되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증석(공자의 제자)은 양조(羊棗·고욤)를 즐겨먹었다. 그가 죽자 아들 증삼(증자)은 양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공손추(맹자의 제자)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공손추: 회자(膾炙·날고기와 구운고기)와 양조 중 무엇이 맛있나요?

맹자: 회자 싫어하는 사람 봤느냐.

공손추: 그런데 증삼은 아버지가 죽은 뒤 왜 양조만 멀리하지요.

맹자: 아버지가 특히 좋아했으니 그렇지.

회자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니 먹어도 아버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양조를 보면 생각이 날 테니 먹고 싶어도 먹지 않는다는 얘기다. 『맹자』에 나오는 회자인구(膾炙人口) 일화인데,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이다.

▶오나라 왕 합려는 초나라를 정벌한 오자서를 위해 회 요리를 마련했다.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일이다.

▶『후한서』에는 조조가 베푼 잔치에서 회를 쳐서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온다. 좌자가 도술을 부려 놋대야에서 낚아 올린 쑹장(松江) 농어회다. 황당한 얘기지만 당시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오나라 땅을 흐르는 쑹장은 쑤저우와 상하이 부근을 거쳐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 등장하는 농어는 우리가 아는 바닷고기가 아닌 손바닥만한 민물고기다.

▶생선회를 즐기는 광릉 태수 진등이 병들었다. 화타가 지어준 약을 먹고 몇 되나 되는 붉은 벌레를 토해냈다. 간흡충으로 보인다.

▶북송 소동파는 복어회를 목숨과 바꿔도 좋을 맛이라고 치켜세웠다. 이태백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시를 짓고, 왕유와 백거이는 잉어회를 노래했다.

한국·일본에서 즐기는 모둠 생선회. [중앙포토]

한국·일본에서 즐기는 모둠 생선회. [중앙포토]

당송시대(7~13세기)까지는 이렇듯 역사 곳곳에 생선회 얘기가 나오는데, 무슨 조화인지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회 얘기가 쑥 들어간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군사들이 조선 사람들이 회 먹는 모습을 보고 오랑캐라고 비웃기까지 했단다. 불과 얼마 전까지 회를 즐기던 중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명나라 전신은 북방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다. 남쪽 생선 문화가 익숙치 않은 기마민족이지만 그렇다고 금하지는 않았다. 사회 혼란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원말 명초이던 14세기 후반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어 인구 절반이 죽었다. 진원지는 중앙아시아였다. 왕조교체기라 어지러운 상황이던 중국도 피해 가지 못했을 테다. 이 뒤에도 18세기까지 크고 작은 전염병이 100여 차례 돌았다. 명나라 말인 1643년에는 베이징 사람 40% 정도가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전염병과 기생충에 대한 공포로 생식이 사라지고 재료를 튀기고 볶고 쪄내는 조리법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일본도 오래전부터 날생선을 먹어왔지만 사시미(刺身)란 단어는 1399년 한 요리책에 처음 등장했단다. 1392년 조선이 건국했으니 그 어름이다. 일본서 생선회가 확산한 시기는 17세기 들어서라고 본다. 1603년 에도(도쿄)에 막부가 생기며 권력의 중심이 내륙인 교토에서 바닷가 에도로 옮겨가면서다. 세계인이 사시미와 스시를 즐기게 된 시기는 일본 경제 호황기인 1970~80년대다. 일본기업들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음식문화도 함께 따라 나갔다. 그 뒤에는 ‘있는 이들이 먹는 고급음식’이라는 치밀한 홍보 전략이 있었다.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 덕에 샥스핀을 세상이 다 알게 된 것처럼.

날생선은 별로지만 중국 사람들은 여전히 물고기를 즐긴다. 특별한 날 또는 귀한 손님맞이나 잔칫상에는 반드시 생선요리가 오른다. 춘절(설)이면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한다. 북방은 만두를, 남방은 쌀로 만든 떡을 먹는데 남북 모두 생선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베이징이나 산둥같은 북쪽 지역은 잉어(鯉魚)요리를 최고로 친다. 중국어로 발음이 이익(利益)과 비슷해서 잉어 먹고 부자가 되라는 의미다. 상하이같은 남쪽 지역에서는 금빛 조기 요리를 낸다. 푸젠성과 광둥성 일부 지역은 회 문화가 이어져 왔다. 다만 일본처럼 썰어서 간장에 찍어 먹지 않고 양념에 무쳐 먹거나, 뜨거운 죽에 넣어 겉만 살짝 익힌다.

한국 회 문화도 역사 깊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갖가지 물고기 회가 등장한다. 수렵채집 시절부터 강과 바다 가까이 살던 사람들은 어디서나 날생선을 먹었을 테다. 회를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의 특정 음식으로 특정할 수 없는 이유다.

※정리: 안충기 기자

왕육성 중식당 ‘진진’셰프.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서울 서교동의 작은 중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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