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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쪽 골프 규칙 너무 복잡, 명랑골퍼는 8쪽 요약본이면 충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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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24면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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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규칙은 태초에 없었다. 규칙 없이도 골프는 유행하고 있었다. 골프의 발상지라고 일컬어지는 스코틀랜드, 그 곳에 1457년 골프금지령이 선포되었다. 골프를 하느라 활쏘기 훈련도 게을리 하고 일요일엔 성당도 빠진다는 이유에서다.

골프금지령(1457년)부터 최초의 성문 골프규칙(1744년) 사이에는 300년 가까운 간격이 있다. 최소 3세기 동안은 규칙 없이 골프가 플레이된 셈이다. 어떻게 규칙 없는 골프가 가능했을까.

초창기 골프는 일대일 매치플레이였다. 많아야 2대2 매치플레이였다. 갈등은 둘이 해결할 수 있었다. 볼은 놓여 있는 그대로 쳤고 칠 수 없다면 그 홀에서 졌다고 선언하면 됐다. 그러나 회원이 늘어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대일 매치플레이로는 한계가 있었고, 갈등이 늘어나 합의된 규칙이 필요해졌다. 한 골프 클럽에서 처음으로 클럽 챔피언을 뽑는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13조로 이루어진 골프 규칙이 발표되었다. 이 때가 1744년이다.

골프는 300년 넘게 규칙 없이 경기됐다. 그리고 또 300년 가까이 흘렀다. 골프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포츠가 되었다. 골프 규칙은 점점 두꺼워졌다. 1744년 한 페이지 짜리 세계 최초의 골프 규칙은 2023년 200페이지 책이 되었다. 200배 늘었다. 1744년 규칙은 330개 단어로 짜여졌으나 2023년 규칙은 7만3000여 단어로 이루어졌다. 220배 늘어났다. 전 세계 단일 규칙이었던 1952년 골프규칙은 예외 조항이 8개 밖에 없었으나 2023년 규칙에서는 148개로 늘어났다. 그만큼 골프 규칙은 미로(labyrinth)가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복잡해지는 골프 규칙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레프리로 10년 넘게 활동해 왔고 골프역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필자도 헷갈리는 규칙 문제가 끊임없이 생긴다. 골프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골퍼들에게 ‘규칙은 어렵다’는 인식을 주게 될 것이고, 규칙을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골프 규칙이 복잡해지면 골퍼로부터 멀어진다. 골퍼들은 200페이지가 넘는 골프 규칙 책을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500쪽짜리 가이드북은 레프리들만 읽게 될 것이다. 더구나 골프 규칙은 4년마다 개정된다. 미세하게는 3개월마다 바뀔 수도 있어 계속 업데이트해야 규칙에 정통할 수 있다.

이제는 골프 규칙이 골퍼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때가 되었다. 다행히 2019년 골프 규칙부터 골프를 ‘일반적인 플레이(General play)’와 ‘경기(Competition)’로 구분짓고 있다. 일반적인 플레이는 재미를 위한 경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랑골프다. 경쟁보다는 재미에 방점이 찍힌다. 규칙에 대한 갈등도 친선의 범위 안에서 해결 가능하다. 반면에 경기는 돈이나 명성, 우승을 향한 경쟁이 있는 골프다. 정정당당한 우승자를 위해서도 규칙은 공평하고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경쟁이 격화되면 분쟁도 늘어난다. 덩달아 경쟁을 제도화하는 규칙도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골프를 친선 게임으로 즐기고 있는 명랑골퍼들에게는 2페이지의 에티켓과 8페이지 정도의 간단한 규칙 요약본만 제공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가 됐다.

최진하 전 KLPGA 투어 경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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