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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꽈배기 유탸오(油條)와 송나라 간신 진회

중앙일보

입력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아침식사 유탸오(油條). 바이두(百度)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아침식사 유탸오(油條). 바이두(百度)

중국식 콩국 떠우장(豆漿)과 여기에 찍어 먹는 부드러운 튀긴 꽈배기 유탸오(油條)는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아침 식사다.

중국이나 타이완 홍콩 모두에서 아침 출근 시간 무렵이면 노점 식당이나 간이음식점에서 떠우장과 유탸오 먹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퍼진 음식이다.

하지만 이 유탸오라는 중국 꽈배기, 맛있으면서 먹기 편한 것과는 별도로 그 유래가 살벌하기 그지없다. 유탸오는 생김새가 다양한데 많은 경우 부드럽게 반죽한 밀가루를 살짝 비틀어 기름에 튀겨 만든다. 그런데 이 모습이 약 900년 전의 송나라 간신 진회(秦檜)가 너무 미워서 백성들이 간신의 목을 비틀어 기름에 튀겨 죽이듯 튀겨낸 것이 유탸오가 만들어진 유래라는 것이다.

중국 음식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래도 부연해 말하자면 스토리는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에 나오는 충신 악비(岳飛) 열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시 송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대립하면서 핍박을 당했다. 충신 악비 장군이 군사를 통솔해 금나라에 대항했는데 고종 11년(1138년) 금나라와 내통한 진회가 악비 부자를 모함해 살해했다. 여기까지는 역사적 사실이고 다음부터는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악비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알게 된 백성들, 분통이 터졌지만, 권세가 대단했던 간신 진회를 어쩔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신 밀가루를 사람 모습으로 반죽해 목을 비틀 듯 비틀어 기름통에 넣어 튀겨 먹었다. 그러면서 이름을 못된 귀신(鬼)을 기름(油)에 튀겨(炸) 죽인다는 뜻으로 유작귀(油炸鬼)라고 불렀는데 실은 간신 진회를 기름에 튀긴다는 유작회(油炸檜)를 연상하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어로 귀신 귀(鬼)와 진회의 회(檜)는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미운 인물을 상상해 음식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분풀이함으로써 카타르시스 효과를 거두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역사적 사실로 믿을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는 유래설이다. 그런데 언제 생겨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뜬금없이 여기에 왜 900년 전 인물인 송나라 간신 진회가 등장하는 것일까?

민간에 떠도는 속설 대부분은 얼핏 터무니없는 흥밋거리 이야기에 불과한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속설이 생겨난 데는 나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유탸오 유래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에서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기는 튀김 요리는 11~13세기 송나라 무렵 발달했다고 한다. 그러니 유탸오 유래설은 튀김 요리가 생겨난 시기를 시사하는 것이고 간신 진화는 시대가 송나라였음을 암시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송나라일까?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국 음식의 기틀이 마련된 시기가 송나라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이 됐건 근거 없는 속설이건 중국 음식 이야기가 대부분이 기승전 송나라로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요리의 상당수는 기름에 지지고 볶고 튀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음식에서 식용유가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도 송 무렵으로 본다.

북방 민족에 쫓겨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지만, 덕분에 이 시기에 농업과 기술의 발전, 시장의 활성화로 식용유 산업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일단 송나라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기름은 소나 양, 돼지기름을 사용했다. 식물성 기름은 서역에서 수입해 북방에서 재배했던 호마((胡麻)에서 짠 기름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참기름, 들기름이다. 생산량도 적은 데다 귀했기에 볶거나 튀김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양자강(長江) 이남의 개척으로 콩 생산이 크게 늘었고 동시에 기름을 짜는 착유기술이 발전하면서 콩기름(豆油)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콩기름 이외에도 기름을 짤 수 있는 다양한 채소의 재배가 늘었으니 송나라 문헌 『송회요(宋會要)』에는 착유기로 참기름 들기름과 함께 채소에서 기름을 짰다고 나온다.

원나라 문헌인 『농서』와 『음식수지』 등에 기름을 짜는 채소인 유채(油菜)가 자주 보인다. 송나라 이후 다양한 식용유 생산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식용유 생산 소비의 증가와 함께 시장을 통한 식용유 유통도 활발했다. 남송 시대 문헌 『몽양록』에는 관청에서 유방(油坊)을 설치해 황실과 관청 등에 공급할 식용유를 수매했고 민간에서도 다수의 민영 유방이 출현했다고 나온다. 유방은 일종의 식용유 도매상 같은 기름 유통업체였으니 관청과 민간 주도의 시장에서 식용유의 거래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덕분에 송나라에서는 다양한 튀김 요리가 만들어졌다. 북송의 수도 개봉과 남송 수도 항주의 풍경을 묘사한 『동경몽화록』과 『몽양록』에는 시장에서 파는 기름에 튀긴 떡인 유작병(油炸餠) 화화유병(花花油餠)을 비롯해 10여 종의 튀김 음식이 보인다.

 튀긴 꽈배기 유탸오가 언제 생겼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유래설에서 중국 음식 문화사와 농업사, 경제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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