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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윤희의 한반도평화워치

위기의 K함정 사업…수출 길 열어 도약 이끌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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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

1970년대 초 소총·박격포 개발을 목표로 출범한 K방산이 세계 5대 방산 대열에 올랐다. 50여 년 기간에 이룬 경이적 업적이다. 첨단 자주포와 탱크는 물론 미사일, 초음속 전투기, 지휘·통제 장비,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까지 자체 생산한다.

사실 방위산업은 기업에 크게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이익은커녕 불안정한 국내 소요에 의존해야 하는 애물단지였다.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전문 인력과 라인을 유지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나름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회사에 걸린 명예 때문이었다.

K방산은 세계적 각광 받지만
K함정은 수주 부족에 고전 중
해군력 건설 기반 지키는 사업
경쟁력 알리기 등 지원책 절실

세상 모든 일에 때가 있듯 K방산이 호기를 만났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중국의 무모한 해양 팽창 정책이 만든 기회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는 방산 시장에 큰 교훈을 남겼다. 첫째, 평화를 갈망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일어난다. 둘째, 핵무기 미사일 시대에도 재래식 전쟁 양상과 무기 소요는 변하지 않는다. 셋째, 미래 국가 발전의 토대인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한 해군력이 필요하다.

함정 건조 비용, 미국의 3분의 1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부산 국제조선해양대제전(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선보인 한화오션의 울산급 배치Ⅲ 호위함 모형과 한국형 차세대 스마트 구축함(KDDX-S) 모형.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부산 국제조선해양대제전(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선보인 한화오션의 울산급 배치Ⅲ 호위함 모형과 한국형 차세대 스마트 구축함(KDDX-S) 모형.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천운으로 이 교훈을 충족시킬 방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선진국의 관심이 멀어진 재래식 무기를 꾸준히 연구·개발하여 우수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수요가 폭증해 밤낮없이 라인을 가동해도 부족할 정도라고 한다. 세계 최고 조선 능력을 바탕으로 한 함정 사업도 마찬가지다. 건조 기술은 물론 가성비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같은 함정을 미국에서 건조하면 그 기간과 비용이 3배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정 매출에서 세계 100대 기업이 못 되니 아이러니하다.

어려움을 겪던 K방산이 대박을 터트린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방산 수출 정책이 있다. 적극적 외교와 홍보로 2022년 방산 수출액 170억 달러(약 22조4000억원)라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와 달리 함정 사업은 기술 인력과 수주 물량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가 누적되며 자체 해결이 어려워 자칫 사업을 중단해야 할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수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함정 가격은 전투기의 10배

함정은 선체에서 각종 장비는 물론 많은 부품이 결합한 복합 무기 체계이다. 탑재되는 엔진, 지휘·통제 장비, 미사일, 포 등 단위 장비 자체로 대단히 큰 규모의 사업이다. 총 단가에서 다른 산업과 비교가 안 된다. 90년대 초반 K-1 탱크, F-16 전투기, KDX 구축함 획득 비용은 각각 20억, 200억, 2000억원이었다. 현재 분야별 무기 체계 수출 단가 역시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더불어 함정은 건조하고 난 이후 후속 군수 지원 체계가 방대해 파급효과가 크다. 제대로 수출 시장을 개척하면 K방산의 블루오션이 된다.

문제는 함정 수출이 주문 생산으로 이뤄지다 보니 우리의 능력과 가성비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는 수주가 어렵다는 점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체계적 홍보가 절실하다. 정부는 물론 업체의 강화된 홍보 활동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한국해양연맹은 미국해군연맹이 주최하는 SAS(Surface Air Space) 방산 전시회에 우리 업체가 참가할 수 있도록 협조 중이다. 1965년 설립된 SAS는 세계 100여 국가가 참가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방산 전시회이다.

미국, 가성비 높은 한국 조선소 주시

2차 대전 당시 수천 척의 군함을 건조하던 미국이 지금은 인력난·경영난으로 겨우 2~3개의 조선소를 가동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 해군정보국(ONI) 자료에 의하면 미국 대비 233배의 능력으로 군함을 찍어내듯 생산한다. 함정 보유 수에서 이미 미 해군을 앞섰다. 미 군함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절대적 숫자에서 밀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 해군은 해외에서 군함을 건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미 해군함정프로그램 총괄책임관 토마스 앤더슨 제독이 지난 2월 현대중공업·한화오션·한진중공업을 실사하기도 했다. 유럽·동남아시아 나라들도 해군력 증강에 나서며 가성비가 뛰어난 우리 조선소를 주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해양 방산 홍보를 위해 해군과 부산시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해양방위산업전시회(MADEX)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국제항공방위전시회(ADEX)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부산에서 개최된 MADEX에는 중앙정부의 누구도 참석하지 않아 해외에서 참가한 22개국 대표들이 실망하였다. 향후 MADEX에 다른 방산 전시회와 유사한 수준의 정부 인사가 참석하여 홍보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건조 함정, 국내 업체가 검증해야

끝으로 군함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감항 인증 업무에 국내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함은 국제법상 안전 및 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면제받는다. 그러나 최근 기업의 ESG 활동이 강조되며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는 추세이다. 우리에게는 국제선급협회(IACS)가 인정한 세계 7위의 한국선급(KR)이 있으나 방위사업법 상 참여하지 못한다. 대신 우리 군함은 국방기술품질원에서 군의 사양 충족 여부를 검사하며, 수주한 외국 군함은 해당국 요구로 영국선급(LR)에서 인증한다. KR은 우리 군함에 대한 인증 업무도 수행하지 못하니 당연히 배제된다. 이로 인해 우리 군함의 안전과 외화, 군함 설계 기술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선진국은 자국에서 건조한 함정은 반드시 자국 선급을 이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K함정 사업은 방산 수출 증대를 넘어 해군력 건설의 기반을 지키는 의미가 있다. 한순간에 무너진 미국의 군함 건조 사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조선소가 겪어온 많은 어려움을 고려해서라도 전폭적인 지원으로 수출 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한국해양연맹 총재·중원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