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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철의 퍼스펙티브

노동시장 격차 해소가 교육 과열·저출산 해결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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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승자독식사회가 된 한국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대한민국이 상위 소수가 더욱 많은 과실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사회’화 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외환 위기 이후다. 1995년 이전 대한민국의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35% 정도를 차지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엔 이 수치가 45%를 훌쩍 넘겼다[그림 1]. 상위 1% 집중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하위 50%의 1인당 연간 평균소득은 약 1234만원인데, 상위 1%의 평균은 이들에 비해 무려 46배 많은 5억6000만원이다[표 1]. [그림 2]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상위 1%에 대한 소득 집중은 지난 10년 급격하게 증가했다. 반면 미국, 일본, 프랑스는 모두 불평등이 다소 완화되었다.

한국 상위 1% 집중 심각

〈그림 1〉 정근영 디자이너

〈그림 1〉 정근영 디자이너

의과 대학의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은 것도 이즈음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초등학교 의대 준비반이 등장할 정도다. 왜 이토록 의사가 되고 싶어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의 평생 소득이 다른 직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종합병원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원이 훌쩍 넘는다. 개원의는 평균적으로 이들의 2배 정도 버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박사의 2016년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상위 0.1% 최상위 고소득자는 대기업 임원 29%, 의사 22%, 금융업 종사자가 20%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정해진 은퇴 연령이 없는 의사만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영위한다. 이것이 의대 광풍의 핵심 원인이다.

의사 정년 없고, 평생소득 높아
의대 광풍 핵심 원인으로 작용

언어·제도 탓,병원은 내수 중심
0.1% 의대 가는 사회 희망 없어

고임금 일자리 촘촘히 만들고
실손보험 개편 등 국가개입 필요

의사였던 나는 2002년 사회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의사는 당시에도 고소득 직장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만일 그때도 지금처럼 의사의 소득이 다른 직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면, 내가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좋은 일자리, 미국이 한국의 15배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미국도 의사가 고소득을 누린다. 하지만 미국엔 로펌, 컨설팅, 정보기술(IT)업계의 다른 고소득 전문직 수가 많다. 대기업 일자리 수도 많다. 2022년 기준 포춘(Fortune)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미국 기업이 136개인 반면 대한민국은 18개에 불과하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세계적 대기업에 고용된 인원은 각 1480만 명, 100만 명 수준이다.  미국 인구가 3억 3000명으로 우리보다 6.5배 많지만, 좋은 일자리 수는 15배나 많다. 이렇듯 좋은 직업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꼭 아이비리그나 그 수준의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와 같은 의대 광풍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와 다른 직군의 소득 차이만큼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크다. 대기업의 연봉이 중소기업에 비해 높은 것은 만국 공통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격차가 유달리 크다. 2021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의 임금은 5~9인 사업장 대비 약 2배다(2019년 기준). 반면 일본은 1.3배, 미국은 1.5배, 프랑스는 1.6배 수준이다. 더구나 이들 국가는 그 격차가 줄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직종·사업규모별 소득격차 지나쳐

독보적 고소득 직종인 의사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의과대학에 가는 것이고, 연봉이 훨씬 높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이다. 극한 경쟁과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요약되는 대한민국 교육 과열의 근본 원인이 바로 이러한 직종별, 사업 규모별 큰 소득 격차에 있다.

〈그림 2〉 정근영 디자이너

〈그림 2〉 정근영 디자이너

격차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격차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격차가 지나친 것이 문제다. 격차가 클수록 자녀 교육에 투자해서 명문대 입학에 성공했을 때 누리는 이득이 크다. 그러므로 교육에 대한 과잉 투자는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반면 그 격차가 크지 않다면 무리하면서까지 극한 대입 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여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 됨은 물론이다.

최근 하버드대 라즈 체티(Raj Chetty) 교수팀은 미국 아이비-플러스(8개 아이비리그 대학 및 듀크, 스탠퍼드, 시카고 대학)의 대기자 명단에 있다가 아슬아슬하게 합격한 사람들과 결국 떨어진 사람들의 삶을 추적 조사해 ‘명문대 효과’를 추정했다. 대기자 명단에 있었던 이들의 고등학교 졸업 시의 능력은 거의 같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명문대에 입학한 사람들은 졸업 후 동문이 포진한 고소득 기업에 입사할 확률이 7.2%에서 25.5%로 증가했다. 상위 1%의 고소득자가 될 확률도 8.1%에서 12.8%로 증가했다.

‘명문대 효과’는 친구·동문 힘

명문대가 잘 가르치기 때문일까? 답은 '아니요'다. 2019년 하버드대의 펠리페 바레라-오소리아(Felipe Barrera-Osorioa) 교수팀은 남미 콜롬비아의 명문대에 작은 점수 차이로 입학한 학생과 탈락한 학생을 추적 조사했다. 물론 입학 당시 능력은 거의 같은 사람들이다. 콜롬비아의 대학엔 졸업시험이 존재하기에, 이 성적을 비교하여 명문대의 (차 상위 대학 대비) 교육 효과를 측정할 수 있었다. 결과는 흥미롭다. 입학 당시와 마찬가지로 졸업할 때도 이들의 성적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명문대생은 취업률과 임금이 각각 7.4%, 4.6%포인트 높았다. 명문대 효과가 대부분 대학 이름값(신호 효과)에 있다는 결론이다.

같은 방식으로 예일대의 세스 짐머만(Seth Zimmerman) 교수는 2019년 칠레의 명문대 효과를 측정했다. 그 결과 졸업 후 상위 0.1% 고소득자 될 확률이 1.4%에서 2.1%로 증가했다. 그런데 그 효과가 명문 사립 고등학교 출신 남자에만 국한되었다. 네트워크가 부족한 일반 공립 고등학교 출신과 여성은 명문대 효과가 없었다.

교육경제학의 대부분 연구는 명문대 효과가 학생의 능력을 높이는 것보다는 동문·친구 및 신호 효과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명문대 진학을 위한 무리한 투자는 고임금을 위한 개인의 선택으로는 합리적 결정일 수 있으나 국가적으로는 큰 손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진짜 해법

상위 0.1%의 인재들이 의사가 되는 현실 또한 국가적 손해다.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일하는 병원 산업은 내수 시장 중심이다. 의료에는 언어, 문화, 제도의 장벽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소수의 외국인 진료와 일부 병원의 해외 진출이 사실상 병원 산업이 가진 확장성의 전부다. 우리 사회의 가장 뛰어난 인재는 고부가가치 제조업이나 기술 기업에서 혁신을 통한 생산성 혁명에 투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적 제조업·기술 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출을 늘려 국가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결국 무한 경쟁으로 사회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교육 문제 해결의 열쇠는 노동시장의 지나친 격차 해소에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입시제도와 교육 정책의 변화만으로는 백약이 무효함을 이미 알고 있다. 근본적인 이유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과열이 사그라들 리 만무하다. 누군가는 고소득자 세금을 올리자고 선동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은 (지방세 포함) 49.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엇보다 더 많은 고임금 일자리가 촘촘하게 존재해야 한다. 즉 고부가가치 과학기술 제조업 및 서비스업 육성이 중요하다. 현행 제조업 일변도인 산업 구조의 다양화도 필요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22년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서비스업 일자리의 30.0%가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 등 저부가가치 산업에 몰려있고(OECD 9위),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등의 고부가가치 지식기반산업 비중은 6.2%로 낮은 편이다(OECD 28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좀 더 평평하게 하는 적절한 국가의 개입도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다른 전문직에 비해서 의사의 소득만이 유달리 증가한 중요한 이유가 실손보험이다. 병·의원 이용 시 본인부담금이 대폭 줄거나 심지어 공짜가 되니 의료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상당수는 도덕적 해이에 기반한 불필요한 의료 이용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건강보험재정 악화와 의사 수입의 확대로 이어졌다. 실손보험의 본인 부담을 대폭 늘려야 한다. 비급여 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또한 연구 개발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인의 보상을 늘려야 한다. 적어도 공공기관에서는 과학기술인의 임금을 올리고 은퇴 연령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단순히 이윤을 나누어 가지라하는 방식은 하수다.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생산성을 올릴 수 있도록 정부와 대기업이 돕고, 나머지는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기억하자. 승자 독식의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과도한 사교육 투자도 세계에서 제일 낮은 출산율도 해결이 요원하다.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엔 미래를 위한 건물을 세울 수 없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참고문헌
홍민기. "최상위 소득 집단의 직업 구성과 직업별 소득 분배율." 사회경제평론 29.3 (2016): 27-50.
Chetty, Raj, David J. Deming, and John N. Friedman. Diversifying society’s leaders? The causal effects of admission to highly selective private colleges. No. w31492.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2023.
Zimmerman, Seth D. "Elite colleges and upward mobility to top jobs and top incomes." American Economic Review 109.1 (2019): 1-47.
Barrera-Osorio, Felipe, and Hernando Bayona-Rodríguez. "Signaling or better human capital: Evidence from Colombia." Economics of Education Review 70 (2019):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