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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환골탈태(換骨奪胎)와 황정견

중앙일보

입력

오는 4월10일 실시하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온 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관위 직원들이 설치한 선거일 현황판이 현관 앞에 세워져 있다. 송봉근 기자

오는 4월10일 실시하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온 1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선관위 직원들이 설치한 선거일 현황판이 현관 앞에 세워져 있다. 송봉근 기자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많은 나라에서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선거가 치러지는 한 해다.

여담으로, 필자는 이 연재의 첫 사자성어에 대해 한참 고민했다. 첫 사자성어는 독자분들에게 이 연재의 틀과 맛을 소개하는 그런 배역까지 떠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환골탈태(換骨奪胎)’ 이 네 글자를 선택했다.

‘환골탈태’의 유래는 북송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송 시대라면 당송 팔대가로 잘 알려진 소동파(蘇東坡)가 먼저 떠오른다. 이 ‘환골탈태’는 그와 함께 당대를 풍미한 황정견(黃庭堅)이 시 창작 세계에 처음으로 썼다. 그는 정형시의 창작 기법을 더 세분해 묘사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본래 도가(道家)의 전문 용어인 이 말들을 빌려 간결하게 핵심을 설명했다. 남송 시대의 시 평론서 ‘냉재야화(冷齋夜話)’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환골탈태’는 환골과 탈태, 의미상 이렇게 둘로 나뉜다. ‘뼈를 바꾸다’와 ‘태를 탈취하다’, 직역하면 각각 이런 뜻이다.

‘환골탈태’는 이처럼 시인 황정견의 심오한 인문학적 사색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래와 최초 의미는 망각된 지 오래다. 글자수와 운을 중시하던 정형시는 거의 절멸됐고, ‘환골탈태’의 본래 뜻도 우리 일상에선 이미 사어(死語)가 됐다.

최근에는 어떤 의미로 쓰일까. AI 시대라는 판도라 상자가 예상보다 일찍 열렸다. 사전적 의미를 들춰보는 것도 좋겠지만, 대표적 최근 용례들을 통해 현재 쓰임을 유추해 보는 접근법이 더 빠르고 유용하다. 대략 ‘개인이나 조직의 혁신적 변화’, 이렇게 긍정적인 어감을 뼈대로 삼으면 그 의미가 잡힌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서는 ‘탈태환골(脫胎換骨)’ 이렇게 쓴다. 누군가의 ‘입장이나 가치관의 철저한 개선’을 의미한다. 즉, 유래와 뜻은 같으나 글자와 순서가 조금 다르다.

화제를 조금 바꿔보자. 이 ‘환골탈태’와 썩 잘 어울리는 인물로는 누가 있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실존했던 역사 속 인물 가운데 중국 근대 정치가이자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를 떠올려본다. ‘구유심영록(歐遊心影錄)’은 그가 서구를 방문해 현장에서 쓴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의 책을 읽으며 필자는 한중 근대사의 아픔과 함께 이 ‘환골탈태’를 반복해서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당시 그가 목격한 성숙한 영국 의회와 태동하자마자 시들어가는 중국 의회를 비교 통찰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최근 회자되는 인물 중에는 혹시 누가 연상되는가. 개인이라면 잘 떠올리지 못하겠다. 만약 조직이라면 4월 총선에서 유권자의 투표로 냉정하게 평가받게 될 우리나라 거대 정당들의 현주소가 바로 머리에 스쳐간다. 각 정당은 아마도 습관처럼 이 ‘환골탈태’를 다시 소환해 어떻게든 신선하게 재활용할 방법을 나름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눈이 매우 차갑고 매서워졌다. 그들은 이 온도 차이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획기적이고 새로운 대안은 제시할 능력조차 안 되는 자신들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겸손이 우선해야 한다. ‘환골탈태’라는 가볍지 않은 이 네 글자는 그러고 나서 비로소 궁리를 시작하고 언급도 해야 순서에 맞다. 그래야 유권자가 조금이라도 그들의 진정성을 믿어보게 될 것이다. ‘환골탈태’를 일회용품으로 소모하고 싶은 유혹을 이번에는 잘 극복하길 기대한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독서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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