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현실의 나’를 지켜주는 ‘가상 공간 속 나’, 휴먼 디지털 트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쌍둥이 아이들이 아직 돌 이전이던 시절이다. 아이들의 잠 투정이 유난히 심한 날이었다. 원고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기들은 떨어질 줄 몰랐다. 궁여지책으로 한 아이는 아기 띠로 등에 업고, 다른 아이는 슬링에 넣어 품에 안은 채, 겨우 한 손만 내밀어 키보드를 두드렸다. 제발 몸이 두 개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가족의 일원이자 사회의 일꾼으로, 사적·공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자아실현을 하는 존재로, 해야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나’의 존재가 절실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 세상에서는 ‘또 다른 나’, 즉 휴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의 생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현실 물체 구현
환자 맞춤형 정밀 의료 등 활용
형태·속성 정확한 측정이 우선
악용·왜곡 단속할 제도 갖춰야

디지털 공간에 현실 구현하기

지난해 5월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貴州) 구이양(貴陽)에서 열린 국제빅데이터산업 엑스포 2023에서 텐센트의 클라우드 디지털 트윈이 소개되고 있다. [신화사=연합뉴스]

지난해 5월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貴州) 구이양(貴陽)에서 열린 국제빅데이터산업 엑스포 2023에서 텐센트의 클라우드 디지털 트윈이 소개되고 있다. [신화사=연합뉴스]

정부가 2021년 발표한 ‘디지털 트윈 활성화 전략’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이란 ‘3차원의 디지털 공간에 현실의 공간과 물체를 구현하는 기술’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특성을 복사해 구현하는 경우를 ‘휴먼 디지털 트윈’이라 정의한다. 디지털 공간에 구현하는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휴먼 디지털 트윈은 내가 현실에서 해야 할 일과 책임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사실 이들의 진가는 실제 사람을 대신해 수많은 상황 속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람이 직접 수행하기에는 위험한 상황을 대신 시뮬레이션해 보거나, 개인의 신체적 특성들을 정밀하게 구현하여 환자 맞춤형 정밀 의료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나를 치료해줄 의사가 해당 분야에서 오랜 수련을 거쳐 높은 숙련도를 갖추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위치에 다다르기까지는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 수련의 대상이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 이 모순된 욕구는 휴먼 디지털 트윈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 게다가 환자의 개별화된 신체 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특성에 맞춘 연습과 결과 예측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사람의 몸을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하는 행위는 큰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인체라는 유일무이한 대상에 불가역적 손상을 입힐 위험성 없이, 발생 가능한 다양한 상황 예측을 적은 비용으로 반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적인 몸을 디지털 상에 동일하게 구현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몸의 모든 구성 요소와 조건을 관측하고 측정해 데이터로 환산해야 한다.

먼저 환산해야 하는 건 기준이다. 사람의 몸은 대개 비슷한 형태를 지닌다. 겉모습은 머리 하나, 몸통 하나, 팔 두 개, 다리 두 개이며, 내부로 들어가 보면 심장과 간과 위장은 하나이고, 폐와 신장과 난소(여성)와 고환(남성)은 각각 두 개씩 가지고 있으며, 위치도 대개 정해져 있다. 효과적인 휴먼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체의 표준 정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인 신체의 3차원 디지털 모델 구축을 시도한 바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인체 표본을 확보해 전신을 ㎜ 단위로 스캔하여 전신 CT영상을 구축하는 ‘디지털 코리안’, 인체의 단면도를 구획화해 촬영하는 ‘비저블 코리안’ 사업 등이 그것이다.  또한 2023년부터는 근육과 뼈의 가동 범위와 동작에 관한 데이터를 추가해 신체 움직임까지도 구현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표준 휴먼 디지털 트윈’은 각종 안전 기준이나 대응 매뉴얼 및 교육용 자료를 제작할 때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현실의 나’에 도움될 디지털 트윈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의 몸은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마다 키와 몸무게와 체형이 다를 뿐 아니라, 장기의 위치나 크기·형태도 조금씩 다르다. 지방과 근육 및 혈관과 신경의 분포, 호르몬의 분비량과 주기성, 성장과 노화에 따른 국지적 변화 정도, 특정 물질에 대한 민감도, 면역계의 반응 정도, 기존 병력 등도 모두 제각각이다.

특히 의료분야의 경우, 이런 개인별 데이터들은 개인 맞춤형 의료 기술 실현의 바탕이 된다. 디지털 공간에 휴먼 디지털 트윈을 정확하기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인간 원형에 대한 기준치와 개개인 특성에 따른 변수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밀한 측정 기기의 개발뿐만 아니라, 물성 및 제한되는 속성, 인간을 둘러싼 환경 조건들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 즉, 인간 몸의 형태(shape)와 속성(property)을 정확하게 측정하여 반영하고, 이를 현실의 제약 조건에 맞춰 적합하게 모사(simulation)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었던 쌍둥이 육아에 신기원이 찾아온 건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이었다. 쌍둥이는 서로 의지하며 별다른 정서적 고립감 없이 어려운 시기를 수월하게 넘겨주었다. 휴먼 디지털 트윈 기술은 경제적이고 편리하며 안전하기에 더욱 다양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휴먼 디지털 트윈이 진정으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주체는 현실의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 자체의 정밀화와 정교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수집된 데이터를 다른 목적으로 악용하거나 유출하려는 시도를 막는 기술과 제도도 갖춰야 한다. 의도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과정을 왜곡하는 행위 등을 철저히 단속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실의 쌍둥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든든하게 지켜준 것처럼, 적절하게 구축된 디지털 쌍둥이의 존재는 현실의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