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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길눈’과 양잠이 빚은 마을, 시라카와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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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이른바 ‘일본 알프스’에 포함된 기후현 하쿠산 일대의 첩첩 산골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엄청난 양의 눈이 쌓여 겨우내 고립된 ‘외딴 섬’이었다. 연 강설량이 972㎝, 최대 적설량이 297㎝라니 한 길(3m)이 쌓이는 ‘길눈’의 설국이다. 생활이 불가할 것 같은 이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라카와(白川)촌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은 ‘갓쇼(合掌)조’라는 매우 독특한 집들로 이루어졌다. 마치 스님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45~60도의 가파른 맞배지붕은 적설에 대비하기 적합한 구조다. 지붕 속 공간까지 활용해 3~4개 층이 되며 1층은 주택으로, 2층 이상은 창고와 작업공간으로 사용한다. 지붕은 ‘사스’라 하여 억새나 갈대를 두텁게 쌓아 방수와 보온 기능이 뛰어나다. 사스는 대략 30년마다 교체하는 데 10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대형 공사로 ‘유이’라는 마을의 협업조직이 담당해왔다.

공간과 공감

공간과 공감

원래는 산골 좁은 평지에 논농사로 연명하던 소박한 집들이었으나 18세기에 양잠업을 도입하면서 갓쇼조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높은 지붕 속 공간이 누에치기의 습도와 통풍에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인근 도시들이 번성해 여러 물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시라카와는 누에고치뿐 아니라 화약과 종이 생산도 담당하게 되었다. 산골에 일종의 주-공 복합단지가 들어서게 된 까닭이다.

높은 건물은 지진이 잦은 일본의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갓쇼조 주택은 모든 구조체를 짚으로 꼰 새끼줄로 엮어 매어 지지한다. 원초적이기는 하지만 웬만한 진동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효율적 구조법이다. 다시 말해 시라카와의 집들은 적설에 대비하고 양잠에 적합하며 지진에 유리한 최적의 구조물인 셈이다. 40여 채 갓쇼조 주택들이 모여 동화 속 마을 같은 오기마치는 이미 국제적인 관광지로 변했지만, 인근의 스가누마나 아이노쿠라 마을은 아직도 예전의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