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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반대 여론 무릅쓴 거부권, 민심 수습책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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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5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50억 클럽 특검법'(쌍특검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5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50억 클럽 특검법'(쌍특검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 대통령 “총선용 악법” 쌍특검법에 거부권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50억 클럽 특검법’ 등 ‘쌍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 주도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8일, 정부로 이송된 지 하루만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임시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이 의결되자 윤 대통령이 바로 재가했다. 거부권 행사 자체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으나 다수 국민 여론에 비춰볼 때 아쉬운 결정이었다. 민심을 달랠 후속 조치가 중요해졌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단독 강행 처리한 쌍특검법은 특검 수사와 4·10 총선이 맞물려 굴러가도록 시계가 맞춰져 있다. 특검 추천권이 야당에만 부여되고, 피의사실 공표가 수시로 이뤄질 수 있다. 수사 범위도 별건 수사가 가능하도록 광범위하다. 법률의 명확성, 중립성 원칙에 명백히 반한다. 대통령실은 “총선용 악법”(이관섭 비서실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친야 성향 특검이 허위 브리핑으로 국민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고, 재판 중인 사건 관련자들을 이중으로 과잉 수사해 인권이 유린당한다”며 “헌법상 의무에 따라 재의를 요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 많은 법이지만 여론은 거부권에 비판적

쌍특검법이 절차나 내용 모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거부권 반대’ 여론이 다수다. 중앙일보-한국갤럽(2023년 12월 28~29일, 무선전화면접) 조사에서 65%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조선일보-TV조선-케이스탯리서치(2023년 12월 30~31일, 무선전화면접), 경향신문-엠브레인퍼블릭(2023년 12월 29~30일, 무선전화면접) 조사에서도 각각 63%와 62%가 거부권에 반대했다. 이밖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60~70%가 특검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국민 여론이 대통령실과 여당의 상황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법안의 타당성을 따지기 앞서 김 여사와 기존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특검을 통해 논란을 해소해 달라는 주문도 담겨 있을 것이다. 김 여사의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공언과는 어긋난 돌출 행보가 비판 여론을 자극했다. 특히 명품백 수수 의혹은 확인되지 않은 인사 소문 등과 맞물리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제2부속실 검토 밝혔지만 더 적극 대책 필요

그럼에도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했다면, 대통령 주변을 관찰할 특별감찰관 임명과 김 여사의 공적 활동을 관리할 제2부속실 설치 등 국민의 걱정을 해소할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이관섭 비서실장은 “제2부속실 설치는 국민 대다수가 좋다고 생각하면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후속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국민의 우려를 달래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실과 코드를 맞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서 김기현 대표 체제가 퇴진한 것도 대통령실에 대한 ‘쓴소리 기능’을 상실한 게 결정적이지 않았는가.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노란봉투법·방송3법 등 앞서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들은 곧바로 재투표에 부쳐졌고, 정족수(과반 출석과 3분의2 찬성)미달로 폐기됐다. 이번에도 재의결 절차를 늦출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에 (거부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오는 9일 예정된 본회의 처리가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반사 이익을 노려보겠다는 정략적 꼼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거부권 반대 여론이 곧 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한 지지는 아니다. 수준 이하 정치를 펼치면 여야 모두를 심판하겠다는 신년 여론조사의 민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