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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스캔들'출구 찾는 기시다, 중의원 해산 카드 꺼내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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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10면

요동치는 일본 정국, 흔들리는 기시다 내각 

지난 3일 지진 피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AP=연합뉴스]

지난 3일 지진 피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 [AP=연합뉴스]

일본 정치사에서 ‘정치와 돈’의 스캔들은 총리의 퇴진으로까지 이어진 경우가 드물지 않다. 2024년의 일본 정국도 정치자금법 위반문제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을 뒤흔들기에 충분할 정도다. 지난해 11월 정치자금 문제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기시다 정권은 파티 수입을 총 4000만 엔 정도 과소 기재한 단순한 정치자금법 위반 정도로 인식했다. 당연히 초기 대응도 안일했다. 자민당 각 파벌도 사무적인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베파의 소속 의원들이 파티 수입의 할당량 초과분을 환수받으면서 정치자금으로 기재하지 않고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부터 문제는 확대되었다. 그 파문으로 여론의 압력을 받은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의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을 경질하였다. 또한 자민당 간부인 하기우다 코이치(萩生田光一) 정무조사회장, 타카기 쓰요시(高木毅) 국대위원장,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참의원 간사장도 사표를 제출하면서 ‘아베파 5인방’은 모두 요직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파(?和政策?究?)와 니카이파(志帥?)에 대한 사무실과 가택 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최근 5년간 아베파는 약 5억 엔 정도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니카이파는 억 단위의 수입을 미기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베파를 정권에서 제거하는 것으로 문제를 축소하려고 했던 기시다 총리의 의도와는 달리 정치자금문제는 자민당의 구조적인 파벌 문제로 일파만파 퍼지는 형국이 되었다.

고노·이시바는 자민당 내서 인기 없어

일본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을 수사 중인 도쿄지검이 지난해 12월 19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당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한 뒤 떠나고 있다. 검찰은 이날 다섯째 파벌인 ‘니카이파’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였다. [AFP=연합뉴스]

일본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을 수사 중인 도쿄지검이 지난해 12월 19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당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한 뒤 떠나고 있다. 검찰은 이날 다섯째 파벌인 ‘니카이파’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였다. [AFP=연합뉴스]

그 이전에도 정치자금 스캔들은 일본에서 큰 소용돌이를 일으켜왔다. 총리가 사퇴하거나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는 것이 과거의 사례이었다. 이번 정치자금문제는 일본정치의 분수령이 되었던 1988년 리쿠르트 사건과 비유될 정도로 큰 사건이다. 리쿠르트 사건이 개인의 부패 문제였다면 이번 정치자금문제는 파벌 조직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로 인해 일본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자민당 정서와 정치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는 내각지지율에서 현격히 나타난다.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이 정치적 위기에 잘 대응하지 못한 결과 내각 지지율은 자민당이 정권을 회복한 2012년 이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게다가 자민당 지지율도 하락세가 멈추지 않아 제2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부터 이어져 온 ‘자민당 1강’ 구도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가을 이후 지방선거에서 보듯이 자민당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다. ‘자민당 1강 체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불만이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시다 정권과 자민당의 위기의식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고,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대응은 아베파를 정권에서 제외시키고 향후 정치개혁을 논의하는 조직을 출범시키는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자민당 내에서도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무파벌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수상과 반대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치적 쟁점이 되지 못했다.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이 정치자금 스캔들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시다 정권하에서 자민당 파벌정치가 부활된 것과 연관이 있다. 기시다는 ‘듣는 힘’, ‘관용적인 정치’를 내세우며 변화를 내세웠지만, 구태의연한 파벌 정치에 매몰되어 있었다. 파벌의 균형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기시다 정권하에서 당선 횟수에 따른 순번제 인사의 폐해가 지속되었다. 기시다 총리가 ‘적재적소’를 표방한 작년 9월 개각에서도 새로운 인재의 발탁은 없었다. 오히려 각료와 당 간부의 세습이 현저하게 늘어났다. 게다가 제4 파벌로 당내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는 최대 파벌을 배려해 아베파 ‘5인방’인 마쓰노 관방장관과 하기우다 정무조사회장 등을 계속 중용했다. 파벌정치가 되살아나면서 자민당의 위기 대처 능력은 약화되었으며, 새로운 인재도 등장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기시다 정권이 내놓고 있는 정책들 또한 민심 이반을 부추기고 있다. 내세우는 정책마다 국민들과 괴리를 가지게 됨으로써 기시다 총리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연초 기자회견에서 기시다가 야심적으로 내세운 저출산 대책은 국민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소득세 감면 정책을 갑자기 내놓으면서 ‘선거용’, ‘증세 은폐’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또한 보수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안보정책을 중심으로 한 아베 노선을 고수해 온 것도 국민의 정서와는 달랐다. 국민의 기대와는 다른 정권 운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져 혼란이 가중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내각 지지율은 이미 위험선을 넘고 있다. 그럼에도 기시다 정권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포스트 기시다’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고노 타로(河野太?)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자민당 내에서는 인기가 없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수상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자민당 파벌의 역학이 기시다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기시다의 대항마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기시다의 유일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렵사리 개선된 한·일 관계, 리스크 우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2024년 일본의 정국은 예측 불허이지만, 기시다를 둘러싼 정치환경과 정치적 의도를 고려하면 세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우선 예산국회 이후 기시다는 사퇴하는 시나리오다. 올해 2~3월에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야당이 정치자금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면 기시다의 내각지지율은 더욱더 하락할 수 있다.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은 채 4월 보궐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기시다 총리로는 차기 중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의견이 자민당에서 분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민당에서 ‘포스트 기시다’의 강력한 후보자가 나타나면 기시다는 불출마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또한 야당으로부터 예산안 통과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9월 총재 임기 만료전에 총리가 퇴진하는 것에 대한 각 파벌들의 이해관계도 나쁘지는 않다. 국회의원 중심으로 총재를 선출하는 방식을 변화시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인보다는 파벌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총리가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기시다 총리가 선거로 승부수를 걸 수 있다. 총리 주변에서는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총리 관저로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는 총리를 끌어내리기가 어렵다. 내각 지지율이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총리로서는 가을 총재 선거에서 재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시다의 입장에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중의원 해산을 단행할 수도 있다. 무모할 수도 있지만, 야당 상황을 고려하면 전략적일 수도 있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는 선거에서 협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의석이 줄어들더라도 여당으로서 기시다 정권이 존속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특히 당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최대 파벌 아베파가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총리의 견제세력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총리 관저 측은 3월쯤 임금을 인상하고 6월에 소득세 감세를 실시하면 반전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총재선거 직전에 반대론이 분출해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선거에 대한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셋째 궁지에 몰린 나머지 원하지 않는 중의원 해산을 할 수 있다. 정치자금에 대한 도쿄지검 특별수사부의 수사는 2024년 여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기시다 총리는 선거 시기를 찾지 못해 결국 2009년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권처럼 ‘궁지에 몰려 해산(追い?まれ解散)’을 할 가능성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나타날 수 있다. 야당의 반격으로 자민당이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또한 자민당이 소수 여당이 되었을 때 공명당이 야당과의 연정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현실성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시나리오다.

일본 정국의 향방을 점치기 힘든 만큼 아직은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점치긴 이르다. 하지만 일본 정치 상황의 변화가 윤석열-기시다 정권에서 어렵사리 개선된 한·일 관계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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