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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정부 '과한 홍보'전략이 충격 더 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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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16면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지난해 11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응원전에서 부산의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자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부산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29표를 획득, 119표를 얻은 1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뒤졌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응원전에서 부산의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자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부산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29표를 획득, 119표를 얻은 1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뒤졌다. [연합뉴스]

중국 전국시대 고사 중에 ‘죽은 말의 뼈를 산다’는 매사마골(買死馬骨)의 일화가 있다. 당시 북쪽의 변방에 위치했던 나라 연(燕)의 소왕(昭王)은 이웃한 강대국 제(齊)를 이기고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변방에 위치한 연은 부국강병을 이룰 인재가 별로 없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세상의 인재를 어떻게 하면 연으로 모을 수 있을지를 연에서 지혜롭기로 소문난 신하인 곽외(郭隗)를 불러서 물어보았다.

중국 고사 ‘매사마골’ 분리균형 전략 표본
그때 곽외가 소왕에게 해준 말이 매사마골로,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 천리마를 좋아하는 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멀리 떨어진 지역에 천리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하에게 금은보화를 주고 가서 그 천리마를 사오도록 했다. 그런데 한참이 걸려서 그 신하가 사온 것은 천리마가 아니라 죽은 천리마의 뼈였다. 도착해 보니 천리마가 병으로 죽었기에 그 뼈를 사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진노했다. 자신이 원한 것은 천리마인데, 아무 쓸모도 없는 말의 뼈를 거금을 주고 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하는 “죽은 천리마의 뼈를 산 왕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 천하의 천리마 주인들이 말을 팔고자 몰려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천하의 천리마 주인들이 말을 끌고 찾아왔다고 한다. 죽은 천리마의 뼈도 귀중하게 여겨서 사주는 왕이라면 살아있는 천리마는 정말 높은 값에 사줄 것이라고 천리마의 주인들이 생각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소왕은 곽외에게 큰 집과 보물을 주었고, 이 소문이 나자 자신이 곽외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인재들이 연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은 숙적인 제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게임이론에서는 이렇게 죽은 말의 뼈를 사는 전략을 ‘시그널링(signaling)’이라고 한다. 어떤 왕이든 자신이 천리마를 좋아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막상 천리마를 사려고 흥정할 때에는 제 값을 내지 않고 망설일 수 있다. 천리마의 주인들에게는 이런 왕과는 흥정하기 싫은 것이다. 반면 시중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꼭 천리마를 원하는 왕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흥정을 하고자 할 것이다. 천리마를 좋아하는 왕으로서는 죽은 천리마의 뼈를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함으로써 자신이 시중 가격보다 높은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바로 죽은 말의 뼈를 이용해서 천리마에 대한 왕의 애정과 집착을 시그널한 것이다.

요즘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시그널링으로 광고를 꼽을 수 있다. 기업들은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면서 광고를 한다. 현재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연예인들이 여러 명 등장하는 광고를 저녁 시간에 공중파로 보내려면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말을 소비자가 그대로 믿을 리는 없다. 엄청난 돈을 받고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은 형편없는 상품이라도 항상 훌륭한 상품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광고는 효과가 있는데 그 이유는 품질이 우수하지 않은 신상품을 기업이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면 결국 기업이 큰 손실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신상품을 엄청난 광고비용을 들여서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 놓았는데, 소비자들이 막상 그 신상품을 구매해서 사용해 보니 품질이 나쁘다고 하면 광고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다. 소비자들 사이에 “광고는 엄청나게 하더니 막상 써보니까 품질이 형편없더라”는 입소문이 나서 아무도 신상품을 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쁜 품질의 신상품을 비싼 광고를 통해 홍보하면 오히려 기업에는 큰 손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광고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소비자들은 신상품의 품질이 나쁘다면 저렇게 비싼 광고를 하는 것은 손해이므로, 비싼 광고를 하는 기업의 신상품은 확실히 품질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광고를 믿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자신의 신상품이 뛰어날 때 광고를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방식을 ‘분리균형(separating equilibrium) 전략’이라고 한다. 뛰어난 품질의 신상품을 가진 기업은 자신을 다른 평균 수준의 기업과 차별되고 분리될 수 있도록 소비자에게 홍보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매사마골의 전략도 이런 분리균형 전략이다. 진심으로 천리마를 사려고 하는 왕이라는 사실을 알려서 다른 왕들과 자신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비싼 광고하면 품질 좋을 것이라고 생각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경우를 경제학에서는 ‘통합균형(pooling equilibrium) 전략’의 상황이라고 말한다. 남의 눈에 띄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뜻이다.

조교수 시절의 일이다. 학교에서 일주일간 행사가 있었는데, 참석한 교수들은 참석했다는 서명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당연히 나는 매일 행사에 참석했고 매일 출석부에 서명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선배 교수가 출석부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나는 매일 참석하지 않는데 참석한 날 출석부에 서명을 하면 다른 날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지니까 차라리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바로 이 선배 교수의 전략이 통합균형의 전략인 것이다. 출석한 날 출석했다고 자랑을 하면 결석한 날 결석한 것이 티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조교수였던 나처럼 매일 출석을 하는 경우에는 매일 출석부에 서명을 해서 자신의 성실함을 시그널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드는 분리균형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매일 출석할 생각이 없는 교수의 입장에서는 통합균형 전략을 통해서 출석을 했는지 아닌지를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전략인 것이다.

시그널링 전략의 측면에서 볼 때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통합균형 전략을 써야 할 상황에서 분리균형 전략을 사용한 전형적인 상황이다. 현 정부가 총력을 다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고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을 때, 국민들은 엑스포 유치에 자신이 있다고 믿었고 정말 외교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이루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엑스포 유치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놓고 유치에 실패하면 정부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므로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다면 저런 수준의 홍보를 할 리가 없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부산 엑스포 유치는 2차 라운드도 가보지 못하고 1차 라운드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배했다. 사실 경제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엑스포를 유치하면 국민의 세금을 엄청나게 투자해야 하는데, 재정 적자가 심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따라서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가 국익에 큰 손실을 끼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부산 엑스포를 이용해서 분리균형의 시그널을 보내려 했던 현 정부에는 통렬한 충격인 것이다.

만일 정부가 부산 엑스포 유치에 있어 통합균형 전략을 택했더라면, 그래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추진하면서도 대대적인 홍보를 자제했더라면 이렇게 큰 타격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조용히 부산 엑스포 유치를 추진했는데 성공했다면 대단하다는 평을 받았을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서 너무 늦게 유치 활동을 시작해 불가항력이었다는 변명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부산 엑스포의 유치 실패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능력이 있더라도 유치에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리균형의 시그널을 사용할 상황인지, 아니면 통합균형의 전략을 사용할 상황인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정부라면 그런 정부가 국가를 잘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국민으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정부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정부가 하는 사업은 그 경중을 떠나서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작은 사업 하나하나에 생사를 걸고 검토해서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고 추진이 결정되면 최고의 노력을 경주하여 반드시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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